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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상용 시인 / 가을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6.

김상용 시인 / 가을

 

 

달이 지고

귀또리 울음에

내 청춘(靑春)에 가을이 왔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괭이

 

 

넙적 무투룩한 쇳조각, 너 괭이야

괴로움을 네 희열(喜悅)로

꽃밭을 갈고,

물러와 너는 담 뒤에 숨었다.

 

이제 영화(榮華)의 시절(時節)이 이르러

봉오리마다 태양(太陽)이 빛나는 아침,

한 마디의 네 찬사(讚辭) 없어도,

외로운 행복(幸福)에

너는 호올로 눈물 지운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굴뚝 노래

 

 

맑은 하늘은 새 님이 오신 길!

사랑 같이 아침볕 밀물 짓고

에트나의 오만(傲慢)한 포­즈가

미웁도록 아름져 오르는 흑연(黑煙)

현대인(現代人)의 뜨거운 의욕(意欲)이로다.

 

자지라진 로맨스의 애무(愛撫)를

아직도 나래 밑에 그리워하는 자(者)여!

창백(蒼白)한 꿈의 신부(新婦)는

골방으로 보낼 때가 아니냐?

 

어깨를 뻗대고 노호(怒號)하는

기중기(起重機)의 팔대가

또 한 켜 지층(地層)을 물어 뜯었나니……

히말라야의 추로(墜路)를 가로막은 암벽(岩壁)의

심장(心臟)을 화살한 장철(長鐵)

그 우에 `메'가 나려

승리(勝利)의 작열(灼熱)이 별보다 찬란하다.

 

동무야 네 위대(偉大)한 손가락이

하마 깡깡이의 낡은 줄이나 골라 쓰랴?

천공기(穿孔器)의 한창 야성적(野性的)인 풍악(風樂)을

우리 철강(鐵鋼) 우에 벌려 보자

오 우뢰(雨雷) 물결의 포효(咆哮) 지심(地心)이 끊고

창조(創造)의 환희(歡喜)! 마침내 넘치노니

너는 이 씸포니­의 다른 한 멜로디­로

흥분(興奮)된 호박(琥珀)빛 세포(細胞) 세포(細胞)의

화려(華麗)한 향연(饗宴)을 열지 않으려느냐?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기도(祈禱)

 

 

님의 품 그리워,

뻗으셨던 경건(敬虔)의 손길

거두어 가슴에 얹으심은

거룩히 잠그신 눈이

`모습'을 보신 때문입니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나

 

 

나를 반겨함인가 하야

꽃송이에 입 맞추면

전율(戰慄)할 만치 그 촉감(觸感)은 싸늘해―

 

품에 있는 그대도

이해(理解) 저편에 있기로

`나'를 찾을까?

 

그러나 기억(記憶)과 망각(忘却)의 거리

명멸(明滅)하는 수(數)없는 `나'의

어느 `나'가 `나'뇨.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노래 잃은 뻐꾹새

 

 

나는 노래 잃은 뻐꾹새

봄이 어른거리건

사립을 닫치리라

냉혹(冷酷)한 무감(無感)을

굳이 기원(祈願)한 마음이 아니냐.

 

장미빛 구름은

내 무덤 쌀 붉은 깊이어니

이러해 나는

소라[靑螺]같이 서러워라.

 

`때'는 짖궂어

꿈 심겼던 터전을

황폐(黃廢)의 그늘로 덮고……

 

물 긷는 처녀(處女) 돌아간

황혼(黃昏)의 우물가에

쓸쓸히 빈 동이는 놓였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金尙鎔) 시인 / 1902∼1955

호:월파(月坡). 시인.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

일본 릿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8.15광복 전까지 이화 여전 교수를 지냈다. 193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 줄은 없고나]등의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포와키츠, 램 등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1939년에 간행한 그의 첫 시집 <망향>에는 대표작 [남으로 창을 내겠소] [서글픈 꿈] [노래 잃은 뻐꾹새]등이 실려 있다.

그의 시에는 우수와 체념이 깃든 관조적인 서정의 세계가 담겨져 있다. 8.15광복 후 군정 시절에 한때 강원도 도지사를 지냈고, 이어서 이화 여대 교수로 있다가 1948년에 도미, 1년 만에 귀국한 후 1.4후퇴 때에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풍자적인 수필집 <무하 선생 방랑기., 시 <산에 묻어>와 번역 작품으로 하디의 소설 <아내를 위하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