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시인 / 답우(答友)
길에서 고우(故友)를 반가이 만난지라 내 부끄러움 없이 우거(寓居)하는 토실(土室)로 뫼셔 왔더니 그이 돌아가 후일(後日)에 글을 보내어 내 토실(土室)의 좁고 누(陋)함을 심히 근심하여 주기로 내 이에 두어 장(章) 노래를 적어 그에게 답(答)하니라.
세존(世尊)은 거리 돌아 걸식(乞食) 아니 하셨는가 인자(人子)도 한 평생을 머리 둘 곳 없었나니 내 이제 드는 데 있음을 부끄러워하노라
강산(江山)을 둘러보소 내 집 없는 아우 형(兄)들 등 지고 서로 헤쳐 가시는 양 보옵시오 해 진 뒤 돌아올 곳 있음을 부끄러워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맹서(盟誓)
자비(慈悲)가 님의 뜻이 희생(犧牲) 또한 님의 뜻이 내 몸은 죽사와도 남 도와 사올 것이 님께서 이 길로 예시오니 나도 따라 가오리다
썩어질 몸이어늘 영화안락(榮華安樂) 무엇이뇨 불의(不義)엔 침 배앝고 향기(香氣)로이 살았어라 내 일생(一生) 이 뜻을 지켜 님의 뒤를 이으리다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박연(朴淵)
불타는 홍엽(紅葉)길에 분별 없이 취(醉)한 몸이 청애(靑靄)로 깨고 나니 앉은 곳이 범사정을 어느새 그리던 선경(仙境)을 저도 몰래 들었더라
성거산(聖居山) 가을 저녁 검고 붉고 누르러고 산(山) 넘어 긴 하늘은 쪽 푼 듯이 푸르른데 떨어진 흰 빛 한 줄기 박연(朴淵)이라 하더라
눈을 날리시나 구슬을 굴리시나 바람을 이루시고 구름을 피우시나 안개와 연기에 싸여 아무 그ㅣㄴ 줄 몰라라
암학(岩壑)에 나린 폭포 선악(仙樂)을 아뢰올 제 유인(遊人)은 소매 들고 사장(沙場)에 나리놋다 송백(松栢)도 풍류(風流)를 알아 그냥 섰지 못하더라
물 나린 푸른 벽(壁)에 위태히 선 저 노송(老松)아 어드메 땅이 없어 구태 거기 심겼느뇨 우리도 심산절경(深山絶景)을 찾아왔소 하더라
야폭경(夜瀑景) 더 좋으이 오르는지 나리는지 우렁찬 물소리도 우에선지 아래선지 다만지 천도용궁(天都龍宮)이 이로 이어졌더라
지화자 달이로다 구룡산령(九龍山嶺)에 달이로다 물만도 족(足)한 것을 달이조차 오르시네 구을다 송림(松林)에 앉으며 같이 놀자 하더라
이 폭포(瀑布) 은하(銀河)라니 아마도 옳은 말이 바위에 올라 앉아 고모담(姑姆潭) 굽어보니 명월(明月)도 은하(銀河)를 못 잊어 함께 내려 왔더라
물 아래 저 용낭(龍娘)아 옥(玉)저 부는 님 데리고 달 밝은 이런 밤에 나와 논들 어떠하리 아마도 진객(塵客)을 끄는가 하여 돌아갈까 하노라
이 승지(勝地) 찾아 들며 바삐 오던 저 사람아 돌아서 가는 걸음 어이 저리 더딘게오 청형(淸馨)이 성관(城關)에 남았기로 넘지 못해 그리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밤비 소리
천하(天下) 뇌고인(惱苦人)들아 밤비소리 듣지 마소 두어라 이 한 줄밖에 더 써 무엇하리오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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