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시인 / 신년송(新年頌)
붉은 해 동이 터 오고 새벽닭이 울었다 새해오리까 아니 한 바퀴 해가 돌았으니 새해오리까?
복조리 사라 외치니 새해오리까 호사한 아기들 새배하러 오고가며 널 뛰는 색씨 붉은 댕기 날리니 이 또한 새해오리까?
새해거든 새 맘이 깃들어야지 그 마음 아직도 묵고 녹슬어 못 믿을 건 내 맘이라면서도 내 어찌 새해라 외치오리.
해마다 새해라 마음 단단히 먹어 보건만 날이 갈수록 그 마음 연기같이 사라지나니 내 어찌 새해라 반기오리
허나 이 해만은 내 또 마음의 새싹을 틔워 따스한 봄날에 꽃을 피우고 녹음방초 저 여름을 지나거든 열매를 맺어 보련다 그러면 이 해엔 풀어졌던 이 내 맘을 달구고 달구어 떠오르는 저 해에 머리를 숙이어 내 기어이 마음의 새해를 지어 보련다
삼천리, 1937. 1
박세영 시인 / 아―여기들 모였구나
누가 부르더냐, 해 지는 저녁 거리로, 밀물처럼 몰려드는 시민들은 많은 돈을 내고, 왜놈의 넋을 사러 왔다.
성장(盛裝)한 처녀, 신사, 숙녀, 모리배들, 그리고 눈 정기(精氣) 없는 청년, 학생들이 미친 사람처럼 앞을 다투어 들어갔다. 창경원으로, 요마(妖魔)의 비원(秘苑)으로. 서른 일곱 살 된 사꾸라가 악독한 주인을 잃어, 이제 섬나라를 그리워할 때, 네 주인 섬기던 우리들 왔으니 이 한밤이나 즐겨 보자는 겐가.
엊그제는 금방(今方)에 독립을 달라고, 저자를 들이고, 인경을 치고, 가장 애국자인 양 태극기를 휘두르던 그대들이 그 넋은 어데다 던져 버리고, 이제 모조리 여기 왔는가.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기에 뜨거운 마음이 복받쳐 나와, 기름때 묻은 옷, 헐벗은 옷대로, 민주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나가던 그 거룩한 민족의 산 행렬에, 해방을 놀던 그대들이 아 모조리 여기 왔구나.
누가 부르더냐, 미친 얼빠진 사람처럼 달리는 사람들이 다음날엔 섬나라 길야산(吉野山)에까지 찾아라도 갈 사람들이, 이 한밤, 아니 다음날에도, 독립은 외치면서 참 독립을 알지 모르는 사람들이 아 모조리 여기 모였구나. 답답하다 나는 가슴을 치며 울고 싶고나.
문학, 1946. 7
박세영 시인 / 양자강
흐리고나 바단가 싶은 이 강물은 어지러운 이 나라처럼, 언제나 흐려만 가지고 흐르는구나,
옛날부터 흐리고나, 이 강물은 그래도 맑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이 나라 사람의 마음이 되었구나.
해는 물 끝에 다 갈 때, 물은 붉은 우에 또 붉었다, 아직도 남은 배란 윗물에 나부끼는 돛단배 하나.
산제비, 중앙인서관,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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