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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영랑 시인 / 가야금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28.

김영랑 시인 / 가야금

 

 

북으로

북으로

울고 간다 기러기

 

남방의

대숲 밑

뉘 휘여 날켰느뇨

 

앞서고 뒤섰다

어지럴 리 없으나

 

가냘픈 실오라기

네 목숨이 조매로아

 

조광, 1939. 1

 

 


 

 

김영랑 시인 / 강선대(降仙臺)

 

 

강선대 돌바늘 끝에

하잔한 인간 하나

그는 버-ㄹ써

불타오르는 호수에 뛰어내려서

제 몸 사뤘더라면 좋았을 인간

 

이제 몇 해뇨

그 황홀 만나도 이 몸 선뜻 못 내던지고

그 찬란 보고도 노래는 영영 못 부른 채

 

젖어드는 물결과 싸우다 넘기고

시달린 마음이라 더러 눈물 맺었네

 

강선대 돌바늘 끝에 벌써

불사뤘어야 좋았을 인간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그대는 호령도 하실 만하다

 

 

창랑에 잠방거리는 섬들을 길러

그대는 탈도 없이 태연스럽다

 

마을을 휩쓸고 목숨 앗아간

간밤 풍랑도 가소롭구나

 

아침 날빛에 돛 높이 달고

청산아 봐란 듯 떠나가는 배

 

바람은 차고 물결은 치고

그대는 호령도 하실 만하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그 밖에 더 아실 이

 

 

그 밖에 더 아실 이 안 계실거나

그이의 젖은 옷깃 눈물이라고

빛나는 별 아래 애닯은 입김이

이슬로 맺히고 맺히었음을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그 색시 서럽다

 

 

그 색시 서럽다 그 얼굴 그 동자가

가을 하늘가에 도는 바람슷긴 구름조각

핼슥하고 서느라워 어데로 떠 갔으랴

그 색시 서럽다 옛날의 옛날의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금호강

 

 

언제부터

응 그래 저 수백리를

맥맥히 이어받고 이어가는 도란 물결 소리

슬픈 어족(魚族) 거슬러 행렬하는 강

차라리 아쉬움에

내 후련한 연륜과 함께

맛보듯 구수한 이야기 잊고

어드맬 흘러 갈 금호강

 

여기 해 뜨는 아침이 있었다

계절풍과 더불어 꽃피는 봄이 있었다

교교히 달빛 어린 가을이 있었다.

 

이 나룻가에서

내가 몸을 따루며 살았다.

물소리를 듣고 잠들었다.

오랜 오늘

근이는 대학을 들고

수방우와 그리고 선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도시 믿어지지 않은,

이 나룻가

오릇한 위치에 내 홀로 서면,

지금은 어느 어머니가 된

눈맵시 아름다운 연인의 이름이,

아직도 입술에 맴돌아

사라지지 않고,

이 나룻가 물을 마시고 받은

내 청춘의 상처

아― 나의 병아

 

출전 미상, 연도 미상

 

 


 

본명은 김윤식(允植). 영랑(永郞)은 아호.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에서 출생.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청산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향리에 머물렀다. 광복 후 오랫 동안의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 9.28 수복 당시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김영랑은 1930년 3월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이하윤(異河潤) 등과 창간한 동인지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四行小曲)> 7수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194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거문고>, < 독을 차고>, <망각>, <묘비명> 등 일련의 시작품에서는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 의식이 나타나 있다. 해방 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 <천리(千里)를 올라온다> 등은 일제 치하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강한 의욕으로 충만되어 있다. 시집으로는 <영랑시집>과 자선시집 <영랑시선>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