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용 시인 / 죽은 시인의 노래 -황병승 시인을 위하여
잠은 무거울수록 역한 냄새가 나는 법 아까부터 자꾸 냉장고를 열고 싶었다 비틀어진 밀빵과 반 쯤 남은 우유를 마셔야 목이 풀렸다 터널을 빠져나온 저녁에 들려오는 소리는 먼 이방의 문을 두드리다 가는 종소리를 닮았다.
책상 앞에서 하얗게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발견했다 눈물이 모래처럼 모여지기 위해선 많은 바람의 수련이 필요하다 오랜 갈증은 이렇게 잔잔히 부서지는 거다 바위에 새겨진 기록이 얼마나 참아야 할 부서짐이 였던가 알갱이로 다져진 기록, 다갈색 먼지가 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바닥에선 어제로 흐르는 내일이 되는 것이다
잉태를 한 나무들은 날이 저물 때 까지 신기루를 져 나른다 그늘을 말리는 날에는 당신은 곤줄박이의 무늬를 닮았다 숲의 거처를 바라보는 강물이 입김을 쏟을 때 바람은 무한대의 음악으로 변화되었다 티 테이블에서 딱 한 개의 설탕 봉지를 남겨 놓듯, 당신의 뒷모습은 언제나 씁쓸함을 찾는다
어디서 날아 온 청둥오리가 천변의 개울가에서 알을 낳는다 일월(日月) 위에 입혀진 무늬를 보고 자기 그림자를 찾는 것이랴 아침 햇살이 있다간 순간 한 모금의 물을 마시기 위해선 더 많은 순결을 지녀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계간 『문학 선』 2019년 여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영춘 시인 / 답습 (0) | 2019.12.02 |
|---|---|
| 김분홍 시인 / 러닝머신 (0) | 2019.12.02 |
| 최규리 시인 / 우리 키스할까요? (0) | 2019.12.02 |
| 함태숙 시인 / 나의 누에 (0) | 2019.12.01 |
| 김왕노 시인 /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 세상에 비 내렸다 (0) | 2019.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