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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시인 /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 세상에 비 내렸다
우리 오래 참아왔던 말을 서로에게 강물처럼 흘러 보내자 한 호흡 두 호흡 뜨거운 우리의 숨결이 되살아날 때
이 순간이 천벌을 가져오더라도 후회 없다며 빈 집의 아궁이 같은 마음에 군불을 떼듯이 생솔가지 같은 사랑의 말을 뚝뚝 분질러 넣을 때
어둠 깊어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무엇도 보이지 않고 후박나무 그늘마저 콜타르 같이 손에 척척 달라붙는 난리 중에 허연 달덩이 같이 네가 떠오를 때
끊어진 인연의 올을 하나 둘 이으며 끝없이 나부끼다가 찢어진 그리움을 한 땀 한 땀 깁던 네 섬섬옥수로 차가워진 내 손에 가만히 온기를 전해 올 때
발해로 가 우리의 꽃이 피고 우리의 하늘이 펼쳐지고 우리의 새가 우는 것을 보러가던 발길을 잠깐 멈춰 명아주 이파리에 얹힌 햇살 머금은 이슬방울을 보듯 고이 너를 볼 때
바람과 달빛이 오럴섹스로 부들의 귀두를 오래 핥아 참다못한 부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하늘로 부들의 씨앗을 쭉쭉 사정하듯 휘날리는 것을 우리 함께 볼 때
오동나무 아래 탯줄을 묻듯이 묻은 손톱이 오동나무 꽃잎으로 하나 둘 피어났다가 맨 땅을 수놓으며 뚝뚝 지는 소리 들릴 만큼 우리 예민해 졌을 때
살얼음 뜬 동치미 국물위에 별이 뜨던 씨족 마을의 밤과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한 강낭 꽃 보다 더 푸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게 흐르던 마음을 우리 연모할 때
곳집에 붐비는 달빛과 빗소리로 꽃상여의 꽃이 더 소담스러워지고 선소리 앞세우고 너울너울 북망산천 간 할머니 할아버지 개 복숭아 꽃 피니 잘 개실 거라고 우리 입 모을 때
광활한 역사 위에 뜬 별이 북방여치 울음 위에도 뜨고 문턱을 넘어 자갈밭으로 간 아무르장지 뱀 꼬리 위로도 뜨고 우리가 벗어둔 신발 위에도 뜰 때
그 많은 순간순간이 닥치고 멀어지고 할 때 너와 내가 순간순간 닿을 때마다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가까워질수록 더 아득해지는 안타까움으로 더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죽음으로 가는 휘어진 길이라 해도 둘이는 갈 수 밖에 없었다.
가끔 뜨거운 호흡을 가다듬으라는 듯이 들려오던 빗소리,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 세상에 비가 내렸다. 온톤 세상이 푸르러져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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