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미희 시인 / 에덴의 동쪽
달의 꼬리를 잡고 축축하고 울퉁불퉁한 표면의 우울을 혀로 핥아 봤죠 맥없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몽롱했어요. 이제 동쪽의 남자를 따라가야겠어요
어떤 곳인가요
지나가는 새들에게 물어봤어요 새들은 그저 지저귀죠 세상의 모든 아주머니는 이미 에덴에 살고 있거나 다녀온 사람들, 그녀들은 손사래를 칩니다 입이 작은 남자와 발이 큰 남자, 신사의 얼굴에 짐승의 손을 갖은 남자들이 수두룩하지만 그중 저 화상, 이라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여자는 큰 발에 대한 로망이 있었죠 이것은 스톡홀룸 증후군* 딸들은 오랜 기간 아버지의 인질이었죠
여자는 큰 발의 남자 발등을 타고 동쪽으로 갔어요
세상의 동쪽은 하나지만 에덴은 너무도 많죠 나의 에덴은 한 곳이지만 동쪽은 즐비하죠 에덴은 끝없는 노동으로 개간해야 할 곳
발이 큰 남자를 개간했어요 앞서 걷는 남자의 발은 아무리 개간해도 에덴이 될 수 없지만 그래도 한때는 남자와 같이 에덴 사진관에서 사진도 찍었죠 에덴이라는 곳, 주변에 널려 있는 걸요. 에덴미용실, 에덴수퍼, 에덴세탁소, 갈 수 없는 곳들은 종종 우리 곁을 찾아오기 때문이죠
*공포심으로 인해 극한 상황을 유발하는 대상에게 긍정적 감정을 가지는 현상
웹진 『시인광장』 2019년 8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함태숙 시인 / 나의 누에 (0) | 2019.12.01 |
|---|---|
| 김왕노 시인 /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 세상에 비 내렸다 (0) | 2019.12.01 |
| 이어진 시인 / 눈송이 레시피 (0) | 2019.12.01 |
| 권이화 시인 / 아름다운 태양의 발목을 잘라 구름 속으로 던지겠어요 (0) | 2019.12.01 |
| 유지소 시인 / 중심의 연못 (0) | 2019.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