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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정현 시인 / 멈춘다고 다 나쁜 건 아니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3.

김정현 시인 / 멈춘다고 다 나쁜 건 아니다

 

 

멈춘 건 내 키만이 아니었지

기억력이나 아이디어나 시상까지도 그랬지

멈추었다고 모두가 아둔한 게 아니듯

초록의 옷 입은 잠잠한 호수

탁류 속에서도 몸부림 한 점 없었지  

투명한 먹이사슬 같은 삶의 거울 앞에 선 언니처럼

슬픈 즐거움을 뒤로할 때마다 실긋 스마일을 되뇌었지

 

티브이에서는 곱사춤을 추는 옥진 여사

하루 세끼 밥을 먹지 않아도 식기는 반짝거리게 닦아놓았지

피 서린 내장탕국물을 유난히 좋아한 백치의 남편 수롱은

탁주 같은 나날을 지내다

그 밤 탐욕을 삭이지 못해 눈에 핏발 섰었지

아다다, 슬픈 눈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

그녀에게 태초부터 없었던 언어를 칭칭 싸매

시퍼런 강물의 먹잇감으로 주고 말았지

 

멈춘 건 시간만이 아니지

어둑한 달 주변에 적막을 깬 물소리

아직도 핏방울처럼 빨간 통증으로 앓아누웠지

 

웹진 『시인광장』 2019년 8월호 발표

 

 


 

김정현 시인

2004년 계간 《지구문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내가 사랑한 사기꾼』外 4권과 산문집 『수수한 흔적』, 동시집 『눈 크게 뜨고 내 말 들어 볼래』, 그림동화 『키가 쑥쑥 마음도 쑥쑥』 있음, 현재 국제 pen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서초문인협회 회원, 계간 가온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