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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미영 시인 / 핑크 증후군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5.

이미영 시인 / 핑크 증후군

 

 

당신이 당신을 믿지 못하면 분홍도 분홍을 믿지 못하죠

취향이 분홍을 만들고 분홍은 등급을 나누고

아무도 분홍의 열등감을 알아채지 못할 거예요

여자를 입었던 분홍이 당신 앞에서

또 다시 여자를 벗기고 있어요

분홍이 여자를 바꾸는 건 시간의 습성

디퓨저에 분홍을 타면 불미스러운 공기는 사라지고

관계는 연한 핑크빛으로 바뀌죠

온기를 품은 상냥한 눈빛,

헬로우 키티의 입이 왜 없는지 의문을 갖지 마세요

말이 많은 건 쓸데없이 분홍을 조절하죠

조용한 분홍빛 내숭이 좋아요

경쾌한 분홍이 필요한 침대에선

코럴 핑크, 인디 핑크, 핑크 퍼플…

형식적인 욕망에 만족하고 싶나요?

그렇다면 애쉬 핑크로 실루엣을 한 번 염색해 봐요

모발 속 지루한 멜라닌은 쏘옥 뽑아버리고

핑크 캣이 되고 싶은 절실한 체위와 만나봐요

연분홍이 핫 핑크로 물들어가는

멋진 그라데이션의 계절에 말이죠

밤의 색깔마저 분홍을 향해 전진하고 있으니

절정은 색깔의 문제

이제 분홍이 분홍을 잔뜩 껴입기 시작했어요

 

웹진 『시인광장』 2019년 8월호 발표

 

 


 

이미영 시인

2019년 제8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등단.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