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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정현 시인 / 어쩌면, 어쩌면-암바라와의 해바라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6.

김정현 시인 / 어쩌면, 어쩌면-암바라와의 해바라기

 

 

유리알 같은 하늘 아래  

일제의 총칼 앞에 무너진 소녀의 아픔

하늘 끝 저기쯤 뛰놀던 동산일 것 같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만가만 서있습니다

 

허름한 칸막이 문 앞에 늘어진 시커먼 그림자

무섭고도 두려워 오들오들 흔들립니다  

서슬 퍼런 사나운 늑대에게 물린

생채기가 노랗게 피었습니다

꽃잎에 떨어진 빗물은 흐르지 못하고 썩어 출렁이다가

거뭇거뭇 상처로 박힙니다

 

일천구백사십오 년 팔 월 십칠 일

만세 소리 하얀 구름에 실려왔습니다

부풀었던 기쁨은

여비 없는 빈 주머니를 스치는 바람이었습니다  

뿌리 깊은 그리움이

환향녀 환향녀 환청으로 떠돌다

청각에 귀딱지 촘촘히 박혔습니다

암바라와 들풀되어서 따갑게, 거칠게

 

계간 『가온문학』 2019년 여름호 발표

 

 


 

 

김정현 시인 / 어쩌면, 어쩌면-자바섬에 떨군 눈물

 

 

 어쩌면, 애시린 바람이었을지 몰라

 어쩌면, 땀방울이 핏물이었는지 몰라

 어쩌면, 구름 속에 그리움이 실려 다녔는지도 몰라

 

 뜨거운 햇살 아래 촘촘히 익는 건

 해바라기 씨앗이 아닐는지 몰라

 박제된 고향이었는지 몰라

 하이애나에게 살려달라 애걸하는 호소

 세상 나 몰라라 팽개쳐진 포기였는지 몰라

 파릇파릇 들풀이었는지

 처음부터 가녀린 동물이었는지

 

 어쩌면, 하늘로 올라가다 도로 내려왔을지 몰라

 어쩌면, 보이지 않는 바람 속에서 말을 걸었을지 몰라

 

 소녀의 푸른 머리칼 출렁이고

 조선 독립군이 대한 독립 만세 외치며 달리는

 어쩌면, 어쩌면 그런 눈물이었을지.

 

격월간 『여행문화』 2019년 7~8월호 발표

 

 


 

김정현 시인

2004년 계간 《지구문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내가 사랑한 사기꾼』外 4권과 산문집 『수수한 흔적』, 동시집 『눈 크게 뜨고 내 말 들어 볼래』, 그림동화 『키가 쑥쑥 마음도 쑥쑥』 있음, 현재 국제 pen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서초문인협회 회원, 계간 『가온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