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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진 시인 / 나비의 탄생
나비가 되었지만 나는 나비가 아니다 더 이상 상징이 아닌데도 누군가 고양이를 나비로 불렀고 가끔 나를 흘겨보았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수많은 전단지가 태어난다 롱패딩이 점령한 거리 꿈틀거리는 애벌레들 겨우 태어난 계절의 끄트머리
방학 특가 세일, 가족 활인 메스로 명징 해지는 선과, 불가능한 다음번 겨울
나는 성형 나비들을 채집한다 전단지 속의 여자는 날아갈 것만 같은 애드벌룬처럼 성형 전과 후로 나뉜다
나비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백 년 동안 전단지를 나눠줘야 한다
한 장에 지루한 노랑 한 움큼 접히고 구겨지고 버려지고 보도블록에 박혀있는 나비 사체들
기다림이 달라서 날개는 이동의 방식이 다르다
내일부터 강력한 한파가 몰려온다는 전광판 뉴스 다음 생에서 온전한 나비로 태어날 수 있을까
12월에도 나비는 복제 중이다
계간『딩아돌하』 2019년 여름호 발표
진혜진 시인 / B203에는 장수하늘소가 산다
장수하늘소는 구름입니다. 뒷모습엔 장수가 없고 하늘이 없고 코뿔소가 없어서, 그냥 지금 여기입니다. 언제부터 그늘 밖을 겉돌았는지. 시장 모퉁이를 돌면 좌판에서도 꽃이 피는 대파와 두부를 담은 검은 봉지가 따라다닙니다
장수하늘소는 날개 꺾인 부엉이인지 낙오된 청둥오리인지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이름만 장수인 장수하늘소, 장수하늘소는 누군가가 떡갈나무를 침범하고 누군가가 산허리를 치받아도 묵묵히 이름에만 머뭅니다
손에 든 대파 한 단 속으로 동그라미가 뭉쳐집니다 파는 사라져서 된장찌개가 될지 어떻게 돌아오게 될지 모르지만 동그라미를 장수하늘소가 꽉 붙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주변엔 오답이 널려 있습니다. 허무만 장수합니다 B203호에 연필심만 뿔이 되어 그를 들이받고 있습니다
계간『포엠포엠』 2019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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