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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주 시인 / 술래의 집
단골가게 주인은 단골손님에게 얼굴 잊겠다며 어설프게 웃는 자, 이름 없는 가게 주인은 이름 없는 손님을 만나 첫인사 가능해지는 자, 낯선 길에서 순간 너인 줄 알고 반갑게 등을 쳤다가, 황당한 듯 서로 눈치 살피다 자폐의 방으로 귀가해야 하는 자, 무작정 도망치는 자의 목적지를 궁금해 하더니, 오늘 출발했던 곳이 목적지일 거라며 목이 긴 두 경찰에게 신고하고 잠들어 버린 자, 그러나 목적지에 갔다가 내리지 않거나 처음부터 목적지가 없던 자, 가위바위보로 순위를 정해 나누는 자, 허튼춤을 추며 상대편 중 마음에 드는 자를 골라 이기면 자기편으로 데리고 가는 자, 상대를 외롭게 하는 재주가 있는 자, 얕은 침묵을 진열해놓고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는 자, 정지화면처럼 서 있으면 최면에서 빠져나오도록 심벌즈 울리고 풍선껌 씹어대는 자, 화가 나면 당장 말하지 못하는 자, 여기가 지옥인데 또 다른 어딜 가냐고 묻는 자, 쉽게 떠나는 자와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는 자, 건널목에서 망설이다 죽은 자, 푸릇한 것들만 보면 죄다 뜯어낸 후 짐승처럼 트림하는 자, 부끄러운 죄 저지르고 몸 숨기는 자, 잠시 숨었다 금방 나타나려고 수많은 가면 준지해둔 자, 오늘밤 혼자 지낼 수 있는 방 하나 없는 자, 이를테면 잘 살아야 하니까 다음 술래 오기만 기다리는 자, 열두 번 종이 울리고 일흔아홉 개의 별이 사라져도, 나는 종일 술래의 집에서 그들만 생각했다.
계간 『시와 미학』 2012년 가을호 발표
성은주 시인 / 24층 창문은 24시간 불빛을 멈추지 않고
방문 열면 떨어질 것 같고 창문 열면 날 것 같아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요일엔 새들의 언어를 기록하자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연습 하다가, 푸른 밤 화살처럼 날다가, 새벽마다 더 크게 울다가, 가끔 살아보고 싶어 누군가의 방문을 두드리다가, 신발을 잃어버리곤 했는데
거리에서 모두 비슷한 신발로 걷고 있는 걸 봤어
동쪽을 보다가 서쪽을 바라보면 머물 필요가 없다는 얘기 공중을 견디는 건 어디도 앉고 싶지 않아서야
육지에 발 닿으면 다신 날 수 없을지 몰라 날개를 죽을 때까지 우아하게 움직여야 해 졸음이 올 경우엔 높게 날았다가 추락하면서 잠들어 깊게 잠들지 않도록 도와줘 육지에 떨어지기 전 눈떠야 하니까
이마를 내리고 가만히 모래그림 보던 새, 조각이 화려해도 곧 무너질 거라며 우울을 앓던 새, 그림을 전시한 무대는 거짓이라고 소리치던 새, 모래의 옆구리 살이 밀려오는 것들에 의해 고통스럽게 뜯기는 모습이 꿈에 보여 잠들지 못하는 새, 주인공이라 해도 주인공이 될 수 없어 말 더듬는 울음 피우던, 그러다 거울 같아 마주했을 뿐인데 떨 어 진
나무가 바람을 만지작거리다가 바람이 되고 싶어서 혹 자신이 바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뭇잎을 자꾸만 자꾸만 떨어트리는것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에서 원을 돌고 도는 새들 24층 창문의 꺼지지 않는 불빛, 넋을 움켜쥔 불빛,
아름다움이 때론 잔인할 수 있다는 것
계간 『주변인과 詩』 2011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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