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이 시인 / 비자흔(飛刺痕)
밤, 읽히지 않은 통사구조를 읽다, 전자렌지를 들여다보면, 반복 돌아가는 내열그릇이 있다, 문 안쪽 던져진 구랍장미와 말리꽃다발이 있다, 들여다볼 수 있게 고안된 구멍에 밖에서 내내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이 있다, 표정에는 반복되는 시간이 있다, 수지樹脂를 주르르 흘리는 거리가 있다, 어느 삽상한 바람내 몰고 오나보다
새 등을 밀어 올리는 안개손
창 아래 케이블에는 신선한 기포가 뚜껑을 열고, 의심은 환영으로 송출하는 소리 있어, 그녀가 반복해 울고, 그 방영되는 시절 반복한다면, 내가 그녀 눈을 가려 데려오고 싶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하느라 신문과 우유는 부글부글 쉰다, 침묵으로 증식하는 글자에, 드러눕고자 하는 세상, 소극적 대처의 날들에서, 속보를 즐기는 이, 일요전단지 같은 나날, 나에게 올 해묵은 봉투더미, 흡음성이 뛰어나, 집합을 부르는 호각소리, 비브라토의 고음 같은 가두신문, 서울 호우경보… 잠수교 보행 통제 얼룩은 들여놓지 않은 것들에 번지는 혈흔, 흩튀는 진흙, 흩튀는 마음, 속시원히 말해다오, 부삽을 들고 나서는 바지들, 신원미상의 군홧발, 신문지상은 일렬종대로 낙수 지는 지면, 꽉 잠긴 센 수압의 수도, 얼핏 들어본 나라는 희미한 활자, 이 역逆한, 동일 궤도로 자전하는 지구에, 읽히는 건, 그래도 사랑이 패하는 시절
하여 나는 상처를 휘어 두르고 간 그곳의 광휘를 본다 그래 무엇이든 날 끌고 오라 퍼덕이는 단 한번 생명을 오랏줄에 묶고 가듯이 겁결에 소모해버린 청춘 나직한 어느 지상에 붙어있으이!
마름풀처럼 물 위에 드리우는 착란으로 이산離散하는 찬란이야……
계간 『시인세계』 2011년 가을호 발표
김윤이 시인 / 사랑에 대한 변론 ㅡ연인
알맹이를 감싼 밀감의 껍질처럼 갓 쌓인 눈냄새가 우리를 덮어쌌다 살며시 그 차이의 질감이 매혹적이었다, 라면 잘못된 걸까 너무나 달콤해서 연인 외엔 모르는 안온한 빛과 설향 내 혀와 이가 맞닿자 서로가 긴밀해졌다
아, 세상이 높직한 하늘 밑 온통 떨고 아잇적 보드득 밟아 본 티끌 없는 흰 것만치 더러 낙차 크게 내 가슴가로 빠지는, 눈발들 보네 맞붙는 몫만이 내 것이라는 이중창에 곤두선 귀로 붙잡혀있네 단번에 내 세상을 흔들고도 유리창은 물끄러미 바라만보네 그가 몹시 좋아, 나로 하여금 일생이 거두어지기만을 갈망하라고 멸하여지는 눈이 내 사랑만 같아서 외듯 내 입술에서 건져 올리는 혼잣말 하나씩은 네 입술, 하나씩은 네 콧망울, 사랑의 넝마주이, 한데 포갠 둘씩은 눈빛 묻은 이 미치광이 눈발들아……
흩날리는 흰 선에 몸 묶여온 내게, 보다 진눈깨비인 특히나 희어지려 사랑의 백문을 묻는 날 본 척 않고 외마디대답 않는 눈이여 돌아올 수 없는 일별로,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시야와 옷매무시 이틀 허기가 져 살얼음 낀 정경에서 귤정과 내가 났네 나 혼자 헤쳐 나오지 못해 어느덧 유리에서의 갇혀짐, 이 빛의 술렁임, 그리하여 열에 떠 펄얼펄펄펄―――― 예나 이제나 강단 없이 더 얼마를 추워 떨려 내가 가진 숨마저 너 있는 겨울로 들어가 버리겠네 자신의 윤곽을 무너뜨리며 서로의 살 속으로 파고들어가
계간 『포엠포엠』 2013년 가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린 시인 / 통조림 (0) | 2019.12.11 |
|---|---|
| 서안나 시인 / 진폐(塵肺) (0) | 2019.12.11 |
| 성은주 시인 / 술래의 집 외 1편 (0) | 2019.12.11 |
| 김륭 시인 / 어느 로맨티스트의 산책 외 1편 (0) | 2019.12.11 |
| 김지율 시인 / 코스모스 광장 외 1편 (0) | 2019.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