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율 시인 / 코스모스 광장
능금 한 알이 떨어져, 지구는 부서질 정도로 아팠다 이상,「최후」
우리는 모두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계단 끝에는 화분이 놓여 있었다 먼 나라 노동자들은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며 웃는다 하나 둘 바닥에 깔린 돌을 밟는다 사라지는 발자국처럼 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어느 날 광장의 연주자는 마지막 공연을 하고 잠든 척 죽었다 플래카드가 바람처럼 펄럭인다 광장, 광장 앞을 버스가 지나가고 건널목으로 두 사람이 걸어온다 안개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꿈이라 했고 누군가는 기억이라고 했다 십 년 전의 예언과 십 년 후의 악몽이 같다는 생각 누군가는 그것을 침묵이라 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용서라고 했다 아무도 기차를 타지 않았고 아무도 기차를 기다리지 않았다 계단과 계단을 지나 보도블록과 보도블록을 지나 셀 수 없이 많은 여름과 셀 수 없이 많은 겨울이 지나간다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로 목소리와 목소리 너머로 지구 반대편의 나비와 선인장에게 까지 이미 어두운 것과 어두워지는 것 사이 남은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을 더 슬퍼했다 작은 사람 뒤에 더 작은 사람이 파란 목을 움츠리고 서 있다 머리 위를 보세요 아가씨는 예쁘고 새들은 평화로워요 누군가 그것을 시작이라고 했다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를 떠나고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를 기다린다 백 년이 지나고 다시 백 년이 옵니다 내일은 지중해의 하늘같이 파랗고 맑은 날 누군가 벗어 두고 간 낡은 신발들을 말립니다 계단에서 맨발로 서 있던 네가 주머니 속에서 오래 잡고 있던 귤 누군가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했다 코스모스 속의 코스모스와 코스모스 사이의 코스모스 작은 너의 손을 잡고 부르던 수많은 이름처럼 우리는 그곳으로 가고 있거나 이미 도착해 있었다
계간 『동안』 2019년 봄호 발표
김지율 시인 / 문학수업
다섯 번째 문장 끝에서 구두끈을 매더군요 이 문장을 지나면 점점 사라지는 문장이 있죠 분노의 돌을 던지거나 아침을 굶었더라도 중요한 문장은 무조건 밑줄을 치세요 어디까지나 우리는 사적인 관계, 서 있을 때보다 앉아 있을 때 더 커진다는 말에 마침표를 찍으세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현재시제에 맞는 감정은 호르몬 문제니깐요 결국 머리는 또 자랄 거고 구두는 떠나겠죠
아녜요 두 번째 문장은 지워버리세요 당신은 시도 때도 없이 푸른 잎사귀 따가운 햇살이죠 뚜껑은 어딨니?라는 말에 대해 오 분에 한 번씩 대답해야할 의무가 나에겐 없거든요 누구든 테이블은 있고 의자는 많으니깐요 오늘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내가 하는 말 들었어였는지 난 귀머거리가 아니야였는지 헷갈렸어요 그러니까 모르는 문장은 그냥모르면 됩니다
이젠 문/학/수/업이라고 소리 내어 읽지 마세요 어차피 식당에서는 모두 배가 고프고 복도에서는 누구나 발소리를 낸답니다 오늘 가장 만들고 싶은 문장이 아버지를 밟고 간 구두발자국과 해바라기氏 염장지르다였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괄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은 아이들이 씩씩하게 자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 번째 문장이 가장 아름다운 非文/碑文입니다
계간 『시와 경계』 2011년 여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은주 시인 / 술래의 집 외 1편 (0) | 2019.12.11 |
|---|---|
| 김륭 시인 / 어느 로맨티스트의 산책 외 1편 (0) | 2019.12.11 |
| 김예강 시인 / 해변 (0) | 2019.12.11 |
| 조유리 시인 /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외 1편 (0) | 2019.12.11 |
| 천서봉 시인 / 각성 외 2편 (0) | 2019.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