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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륭 시인 / 어느 로맨티스트의 산책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1.

김륭 시인 / 어느 로맨티스트의 산책

 

 

  그는 자꾸 떠나려고 하고, 그런 그를, 그는 자꾸 어이없어 하다가

  깜짝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는 툭툭 돌멩이 하나를 깨우려하다가

  이건 뭐,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그는 실실 자꾸 실없이

  웃으려고 하다가 지난밤의 섹스가 양심에 찔리는지

  마이너스통장에도 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는 자꾸자꾸 두 발을 저어

  늙은 배롱나무 밑으로 흘러내리는 심장을 만지작거리다가

  식은 손을 주워 머리 위로 집어던지다가

 

  공기보다 가벼운 말투로 혀를 녹이려하다가 그는 자꾸

  무거워지려는 얼굴을 피하기 위해 그는 자꾸 다정해지려고 하고

  자꾸자꾸 형식적으로, 개개비 둥지에 벽시계를 걸어놓는 뻐꾸기처럼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하다가 인간을 벗어났다는 걸 눈치 챈 그는

  자꾸 원숭이보다 높이 올라가려고 하고, 그런 그를, 그는 자꾸자꾸

  눌러 앉히려하다가 궁둥이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며, 뻐꾹

  두 발이 살살 혀에 감기는 듯 그는, 자꾸, 뻐꾹, 뻐뻐꾹

 

  자꾸 그는 먹고사는 일을 한가한 취미생활로 바꾸려고 하다가

  그는 자꾸 방탕한 선비생활을 먹고사는 일로 바꾸려고 하다가

 

  이건 뭐, 예술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고, 깜빡 그를 지나친

  그는 자꾸 뻐꾹뻐꾹, 하고 우는 뻐꾸기도 아니고

 

  그는 자꾸 붓처럼 휘어지는 다리를 들고 뻐꾹, 뻐뻐국,

  자꾸 뻐꾹, 자꾸자꾸 뻐꾹, 자꾸자꾸자꾸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흙을 주워 담으려고 하다가

  이건 뭐,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누군 딸꾹질 같은 연애하러가고 누군 집에 밥먹으러간다는데

  그는 자꾸 돌아오려고 하고, 그런 그를, 그는 때려죽이려고 하다가

 

  그는 자꾸 뻐꾹뻐꾹 발밑에서 솟아오르는 땅을 살살

  남의 여자 허벅지처럼 어루만지려고 하다가

 

  그는, 자꾸, 뻐꾹, 뻐뻐꾹

 

월간 『현대문학』 2014년 7월호 발표

 

 


 

 

김륭 시인 /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1.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할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들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 내키는 데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김륭 시인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저서로는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와 동시집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엄마의 법칙』이 있음. 201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13년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