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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 시인 / 滴―존재의 집
풀잎에 작은 염낭거미의 집이 붙어 있다 물방울이 풀잎에 맺혔다가 그대로 화석이 된 것 같은 낡은 빛깔로, 이제는 허물어지고 있는 집 가만히 손가락 끝으로 헤쳐 보니, 마치 고독사의 뼈 같은 작은 염낭거미의 껍질이 놓여 있다 자신의 무게라고는 한 점도 없는, 후 불면 먼지처럼 지워질 얇디얇은 껍질―, 한때 이 지상에서 살았던 흔적처럼 놓여 있다. 태어나, 집도 짓지 않고 마치 생을 배회하듯 살았던, 이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체가 일생에 단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었던 그 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므로 이 지상에서 가장 황홀하고 행복한 거처였던 집이, 이제는 낡아 폐가처럼 허물어지고 있으면서도, 풀잎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완강히 놓여 있다.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한 새끼가 있는 듯 아직도 새끼들에게 먹일, 자신의 체액이 남아 있다는 듯 자신의 손톱으로 자신의 몸에 새겨 넣은 무늬이듯 일생에 단 한번, 자신의 몸에서 뽑아 낸 거미줄로 몇 겹씩, 튼튼한 고치처럼 지은 그 밀폐의 집이―
계간 『시와 경계』 2017년 여름호 발표
김신용 시인 / 滴-대추씨에 관한 小考
마당에 서 있는 대추나무 한 그루, 가을이면 인심 좋은 후덕한 마음씨처럼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다. 과육이 달고 빛깔도 고와 이웃집 강아지까지 찾아 와 땅에 떨어진 대추를 물어가곤 한다. 그렇게 대추가 떨어진 자리, 미처 줍지 못해 흙에 묻힌 대추씨들이 이듬 해 봄이면 어김없이 싹을 틔워 올린다. 부드러운 풀잎처럼 생긴, 연초록의 어린싹들-. 그러나 자라 오르면서 연하고 부드러운 어린싹에는 푸르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그 줄기가 긁어지면서 가시는 누구의 손끝도 닿지 못하게 더욱 날카로워져, 마치 그 무엇의 손길도 거부하며 웅크린 야생의 발톱처럼 느껴진다.
대체 저 후덕하고 마음씨 넉넉한 품을 가진 대추나무에서 어떻게 이런 異種의 씨가 맺혀지는 것일까
DNA를 뗐다 붙였다 하는 유전자 편집으로도 어쩌지 못할 것 같은, 저 자기에게로의 회귀-.
성형수술 된-, 접골 된-, 혹은 이종교배 된-. 나무에서 한사코 母川으로 되돌아가려는, 저 끈질긴 본능
대추씨는 야물다. 쬐그만 것이 이빨로 깨물어도 자국도 안 남는다. 대체 저 단단한 것 속에는 어떤 고집이, 어떤 집요함이 들어 있기에, 자신의 유전자 형질 변경을 그토록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예측 가능하게 예측 불가능한-, 씨에서 보는
저 떨어짐의 무거운 질량!
계간 『포엠포엠』 2016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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