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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은 시인 / 촛불학 개론
너는 내가 보았던 별빛을 어둠의 조각으로 기술한다
강물 위에 떠가는 종이배를, 광장을 덮은 함박눈을,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둠의 이면으로 표기한다
너의 처음은 볕들지 않는 흑막(黑幕)이거나 죽은 시간을 위한 검은 리본, 국화꽃 향기가 불러들인 어둠의 바깥
어둠의 둘레, 어둠의 부피, 어둠의 길이를 지닌 내 안의 죽음과는 다른 바깥이어서
네가 지닌 주먹, 주먹 속에 고인 한 줌의 빛 때문에 나는 너의 진화를 예측(豫測)한다
너는 짐승의 우리를 밝힌다 갓 태어난 송아지울음을 길들인다 성곽의 높이와 담벼락의 깊이를 잰다
성곽에 남겨진 발자국 소리를 지우거나 착지의 바닥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환해진다면 뛰어 내릴 일이 뭐 있겠니, 너는 때때로 심장이 있는 것처럼 질문한다
흘러내리는 그림자를 벽에 던지는 나의 목숨, 나의 긍지를 읽으려 한다
내 입술이 촛농이 될 때 나는 심장이 지닌 슬픔을 촛대에 세운다 촛대가 보여주는 방식으로 최대한 너를 새로이 쓴다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없다면 죽을 일 밖에 더 있니, 너는 내가 보았던 들불을, 작은 불씨에서 번지는 들불의 내력을 시위를 떠난 화살로 기술한다
무명심지에 불을 댕기는 화살, 바람 앞에 선 너의 속도가 빨라진다
계간 『시와 문화』 2017년 봄호 발표
강영은 시인 / 우리는 언제나
너와 나의 표정에서 유리가 만들어진다 너와 나는 유리로 만든 컵을 던지려 한다 표정이 깨어지는 소리를 들으려 한다
너와 나의 감정에서 거미줄이 나온다 너와 나는 거미줄로 묶을 수 없는 종소리를 가지려 한다 감정이 흩어지는 소리를 모으려 한다
오늘은 뜻밖에, 눈이 내린다 몰아치는 눈보라를 잊은 것처럼 후후 입김을 불던 입술과 벙어리장갑을 생각 한다
말없이 걷기만 해도 좋았던 말(言)들, 수식어가 필요 없던 말(言)이 분명 있었지, 너와 나는 죽음을 선고 받은 말(言)의 육체처럼 벙어리가 되려한다
다른 생각이 발화한 것은 훗날의 일 너와 나는 숫눈 위를 걸어간 발자국이 되려 한다 다시 쓰는 문장의 접속사가 되려한다
그것이 불씨라는 것을 안 것은 불씨가 소멸된 후여서 한 순간을 끌어안은 말(言)은 숯불처럼 발갛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장작더미와 요람은 어떻게 다른가, 잿더미에서 다시 태어나는 말(言)의 나이는 몇 살인가,
계간 『문학선』 2017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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