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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화순 시인 / 바다의 여자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3.

김화순 시인 / 바다의 여자

 

 

여자가 바위에 앉아 해경을 쑥으로 문질러 닦는다

바다의 속내를 땅보다 더 잘 아는

그녀, 오늘도 허리에 무거운 납덩이를 찬다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던가

그녀는 정해진 시간만큼 그와 지내고

그는 그녀가 숨을 참은 만큼 몸을 허락한다

늘 거칠고 속내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나쁜 그 남자가 좋다

그래서 바다의 임계온도 꾹 참아내고

못된 성깔 늘 보듬어준다

그녀는 아파도 물질을 멈추지 않는다

물질을 할 때 비로소 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수장된 엄마가 뿌려둔 것 무궁하고

수장될 그녀가 건져 올릴 것 무진한 그는

그녀의 외사랑, 숨겨놓은 샛서방이다

오늘도 칠성판 등에 지고 그의 품을 찾는다

파도에 떠밀려서,

해초에 걸려서,

문어가 숨구멍을 막아서,

바위에 부딪혀서,

보호 장구가 목숨을 위협해도 무섭지 않다

두려울수록 사랑은 커지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그와 함께할 것이라는 믿는 그녀는

남자의 넓은 가슴 가득 숨비소리 풀어놓는다

 

계간 『문학선』 2017년 봄호 발표

 

 


 

김화순 시인

서울에서 출생. 2004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고려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시집으로 『사랑은 바닥을 쳤다』(천년의시작, 2006)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