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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규리 시인 / 겨울 신림동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4.

이규리 시인 / 겨울 신림동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너는 말했다

 

어떤 소리가 겨울을 나지 못하고

떠나갔는지

 

네게 주려고

털 귀마개를 하나 사서 오는 길

 

좁은 골목길에 파지를 끌고 가는 리어카 뒤에

승용차가 밀려있고

뒤는 느린 운구 행렬처럼 묵묵하다

 

들리지 않는다는 건 듣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서

좁고 긴 골목을

이명처럼 윙윙거리는 바람도

귀를 떠나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귀마개가 양 머리처럼 푹신해서

 

이러면 소리가 길을 찾지 못할 거라고

너는 그걸 한쪽에 그냥 얹어두었다

 

난청은 신림동 골목만큼 어지러웠고

그날이 그날인 양 지지부진이었고

 

영하의 추위가 입을 턱 막았어도 어떻게든

골목을 돌아 돌아오면 집이 나왔는데

그게 내 거처라고 이제 말하지 못하겠다

 

가도가도 그 자리인 리어카처럼

 

너는 소리를 기다리지 않은 게 아니라

먼저 나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물속에서 하던 말

아무리 소리쳐도 우리가 듣지 못했던 날들을 대신하여

어디론가 나가버린

 

그 겨울의 귀

 

계간 『문학동네』 2015년 봄호 발표

 

 


 

이규리 시인

1955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시집으로 『앤디 워홀의 생각』(세계사, 2004)과 『뒷모습』(랜덤하우스코리아, 2006)가 있음. 2015년 제6회 질마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