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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진명 시인 / 마을버스 정류장의 우주율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7.

이진명 시인 / 마을버스 정류장의 우주율

 

 

  마을버스 정류장

  일요일이어서인지 배차 간격이 멀다

  오겠지

  정류장 팻말기둥에 붙어 섰다가

  문 닫은 뒤 가게들 쪽으로 떨어져 선다

 

  정류장 팻말기둥 바닥으로 무심히 눈이 떨어진다

  작은 흩뿌려진 것들이 있다

  버린 껍데기, 쓰레기들이다

  기둥뿌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잔잔한 별자리 같다

  진공 속 침묵의 소란이 밀집해온다

  원환처럼 별자리가 돈다

  한 바퀴 돌아온 껍데기들에서 계속 빛이 나온다

  조용히 우주세상이 부풀고 있다

 

  찢기고 구겨지고 발로 비벼진 당신의 것들

  씹히고 뭉개지고 뜯어진 당신의 것들

  당신의 입술에 마주 대었던 적 있고

  당신의 혀에서 녹았던 적 있고

  당신의 손안에 꼭 쥐어졌던 적 있고

  연한 노랑배추흰나비처럼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당신의 가슴 둔덕에서

  그리고 언제나 당신의 눈, 검은 동자에서

  뛰놀았고 출렁였고 물구나무서며

  반디가 되고 해미르가 되고 다알리아가 되고

 

  눈떴고 즐거웠고 사랑했던

  우리를 통과해 나간 매일매일의 아침

  설레는 담장의 찔레장미와 족두리꽃

  채소쿠리처럼 도는 무릎 때를 안고

  양 팔꿈치와 발뒤꿈치는 어디다 숨겼나

 

  지구별에 와서 당신과

  피우고 핥고 비비며 목숨을 나눈 껍데기들은

  쓰레기가 되지 않고 다시 고운 알맹이가 되었다

  정오의 빛 확대되는 마을버스 정류장 하늘바닥에

  따로 또 같이 은하를 간다

  제각각의 일용 속에 뿌려진 투명한 여수(旅愁)

  당신과 소꿉 논 흔적조차 없는 광활보다는

  잘디잔 쓰레기 별자리로 우리 연약함을 위로하는

  버스 늦어도 정다운

  목숨의 무변한 반짝이 마을버스 정류장

 

 


 

이진명(李珍明) 시인

1955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90년 계간 《작가세계》제1회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출판사 민음사에 근무하였으며 계간 《세계의 문학》편집 업무를 맡기도 했다. 시집에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 이 있다. <일연문학상>, <서정시 문학작품상> 등 수상했고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 <한국문학예술위원회창작기금> 등의 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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