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신용목 시인 /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9.

신용목 시인 /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나는 천년을 묵었다 그러나 여우의 아홉 꼬리도 이무기의

  검은 날개도 달지 못했다

  천년의 혀는 돌이 되었다 그러므로

 

  탑을 말하는 일은 탑을 세우는 일보다 딱딱하다

 

  다만 돌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비린 지느러미가 캄캄한 탑신을 돌아 젖은 아가미 치통처럼 끔뻑일 때

 

  숨은 별밭을 지나며 바람은 묵은 이빨을 쏟아내린다 잠시

  구름을 입었다 벗은 것처럼

  허공의 연못인 탑의 골짜기

 

  대가 자랐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

  새가 앉았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

 

  천년은 가지 않고 묵는 것이니 옛 명부전 해 비치는 초석

  이마가 물속인 듯 어른거릴 때

  목탁의 둥근 입질로 저무는 저녁을

 

  한 번의 부름으로 어둡고 싶었으나

  중의 목청은 남지 않았다 염불은 돌의 어장에 뿌려지는 유일한 사료이므로

 

  치통 속에는 물을 잃은 물고기가 파닥인다

  허공을 쳐 연못을 판 탑의 골짜기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 천년의 꼬리로 휘어지고 천년의 날개로 무너진다

 

 


 

 

신용목(愼鏞穆) 시인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0년『작가세계』 신인상에 시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와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가 있으며, 희곡작품으로 노숙자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나비눈』(2006년 1월 아르코예술극장 상연)이 있다. 그 외의 연구서로『다시 읽는 김수영』(공저) 등이 있다. 두 권의 시집은 시대의 외곽에 대한 감각적 사유와 탁월한 언어구사력이 결합한 보기 드문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고, 희곡작품은 소외된 자의 삶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빼어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1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내일을 여는 젊은 예술가 지원’을 받았으며, 두 차례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을 받았다.『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2004년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었고,『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는 2007년도 올해의 최우수시집에 뽑혔다. 또한 이 시집으로 2008년,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시집에 수여하는 제2회 <시작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