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목 시인 /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나는 천년을 묵었다 그러나 여우의 아홉 꼬리도 이무기의 검은 날개도 달지 못했다 천년의 혀는 돌이 되었다 그러므로
탑을 말하는 일은 탑을 세우는 일보다 딱딱하다
다만 돌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비린 지느러미가 캄캄한 탑신을 돌아 젖은 아가미 치통처럼 끔뻑일 때
숨은 별밭을 지나며 바람은 묵은 이빨을 쏟아내린다 잠시 구름을 입었다 벗은 것처럼 허공의 연못인 탑의 골짜기
대가 자랐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 새가 앉았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
천년은 가지 않고 묵는 것이니 옛 명부전 해 비치는 초석 이마가 물속인 듯 어른거릴 때 목탁의 둥근 입질로 저무는 저녁을
한 번의 부름으로 어둡고 싶었으나 중의 목청은 남지 않았다 염불은 돌의 어장에 뿌려지는 유일한 사료이므로
치통 속에는 물을 잃은 물고기가 파닥인다 허공을 쳐 연못을 판 탑의 골짜기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 천년의 꼬리로 휘어지고 천년의 날개로 무너진다
|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정환 시인 / 그리고 색의 자화상 (0) | 2019.12.30 |
|---|---|
| 이시영 시인 / 푸른제복 (0) | 2019.12.29 |
| 고두현 시인 / 서시 (0) | 2019.12.29 |
| 정끝별 시인 / 크나큰 잠 (0) | 2019.12.29 |
| 한정원 시인 / 그대라는 문법 (0) | 2019.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