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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원 시인 / 그대라는 문법
바퀴 없이 굴러가는 풍경들, 편집 되지 않고 돌아가는 느와르 필름들, 에스컬레이터의 멈춤 표시를 누르자 조각난 풍경들이 관성의 힘으로 쏟아진다
너는 오늘 두 번이나 이곳을 지나쳤지만 처음처럼 첫눈처럼 첫가을처럼 내리지 못했다 과거완료와 미래형뿐인 네가 현재가 되는 장소 찔레꽃 그물망 붉은 담장 아래 오후 한 시와 네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무럭무럭 자라고 이십 년 걸려 나를 이해한 시간들은 동쪽에서만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칠월의 태양처럼 확실하게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너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 나의 긍정이 불투명한 부정이 되고 만다는 것
나의 언어에서 ‘그러나’를 빼면 무엇이 생길까 너를 부르기 위해 평화를 스물한 번 미래를 열한 번 중얼거린다
전지를 끝낸 쥐똥나무가 무빙 워크로 강변 쪽 토끼 굴로 이동한다 지평선을 긋고가는 에스컬레이터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지워버려야지
푸른 동맥을 짚으며 햇살을 따라가는 의문들 뼈를 보일 수 있을 때만 나타나는 나의 감옥 속 바퀴 오후 두 시와 다섯 시, 마술사의 시간처럼 향기를 달고 굴러간다
너는 오늘 두 번이나 이곳을 지나쳤지만 전화하지 않았다 그래 처음엔 이름을 잊는다 다음엔 얼굴을 잊는다 그리고 너라는 습관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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