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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백겸 시인 / 매트릭스(matrix)를 노래함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9.

김백겸 시인 / 매트릭스(matrix)를 노래함

 

 

프로그램의 창세기가 열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기호는 생각한다 고로 기호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바뀐 신세계

기호와 개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복사되는 신세계

인간시대의 기호론자들이 바이블의 선지자처럼 추앙을 받는 신세계

인간시대는 기호시대의 수면 아래로 잠기고 기호를 신으로 모신 컴퓨터와 로봇이 불사의 영생을 얻는 에덴설화가 새롭게 창조된 신세계

 

아들아 불구경 가자

매트릭스가 일월성신과 산천초목을 수놓은 시뮬라크르의 미궁을 불구경가자

데이터의 자궁에서 부화한 기호들이 개념의 나비로 날아다니는 프로그램 숲으로 불구경가자

인간시대의 역사와 문명이 기호의 요람에서 태어나 기호의 무덤에서 죽은 선사시대의 고고학 발굴현장으로 불구경가자

매트릭스가 인간시대의 중생과 아라한과 보살과 부처도 분서갱유한 거미줄 화택으로 불구경가자

 

 

* 매트릭스matrix: 수학에서는 행렬行列. 컴퓨터에서는 부품을 종횡의 그물회로로 연결하여 구성한 장치. 여기에서는 모체, 기호의 자궁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썼다.

 

* 시뮬라크르simulacre: 플라톤이 세계를 이데아, 이데아의 복제물인 현실, 현실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구분한데서 기원. 포스트모던 철학에서는 자본기술문명이 하나의 코드로 복제품을 다량생산하면서 이미지인 시뮬라크르가 현실을 선행하는 세계관으로 해석.

 

 


 

 

김백겸(金伯謙) 시인

1953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데뷔했다. 대학에서 학생기자 활동을 하면서부터 문필활동도 시작. 학보사 편집국장을 맡았다가 1970년 초반 군사 정권에 대한 유신반대 데모에 휩쓸리는 등 불안정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세상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을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시집으로『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비밀정원』이 있고 시론집으로는 『시적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 『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라는 광원』,『기호의 고고학』 등

이 있다. 2005년 시집 『비밀방』이 문예진흥원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고 그 밖에 〈대전시인협회상〉, 〈제1회 충남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웹진 《시인광장》과 《시와표현》의 주간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