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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 / 이 아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를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계신 신(神)이여 죽음을 지니고 태어난 저희들은 생명을 키울 용기가 없기에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은 아이를 버립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사진/연합통신)
입가에 피를 흘리며 광란의 이 밤을 도박과 마약의 밤을 집단 자살과 집단 학살의 밤을 굶주림과 굶어죽음을 밤을 AIDS 감염의 이 밤을 견디고 계신 의롭고 외로우신 신이여 AIDS로 죽어가는 루마니아의 아이(사진/AP통신)
문 안으로 못 들어오시는 신이여 죽음을 지니고 태어난 저희들은 생명을 거둘 용기가 없기에 살인을 하지 않으면 살인 방조자가 됩니다
이승하 시인 / 현대의 묵시록
물속에서 군복 입은 시체가 떠오르리라 살과 피가 썩는 악취 터진 내장을 그대로 너덜거리는 한쪽 다리가 없는 시체 만신창이의 시체는 소년이리라 낙동강 전투, 메콩강 전투 죽은 소년들이 수없이 떠올랐듯 강에서 산악에서 도시에서 수도 없이 버려지리라 소년들의 죽음은 태어난 순간부터 결정되어 있지는 않았네 사랑보다 먼저 증오를 배우고 용서보다 먼저 분노를 익힌 소년 병사들에게 물을 필요는 없으리 장난감이 아닌 그 총을 무엇을 바라 손질하고 있는가를 동요가 아닌 그 노래를 누구를 위해 부르고 있는가를 그런데도 어른들은 웃고 있으리 거기, 사람을 닮지 못한 어른들이 사람의 얼굴을 한 어른들이 의지할 주님도 없이 은총도 모른 채 문명의 고혹적인 입술 아래 경련하며 표적 없는 어둠 향해 방아쇠 당기리 피 마르지 않은 칼로 피 식지 않은 죽은 자를 난자하리 한 모금의 공기가 남지 않을 때까지 한 모금의 물이 말라 없어질 때까지
이승하 시인 / 폭력과 광기의 나날
폭력 없는 시대가 있었던가 피라미드도 만리장성도 파르테논 신전도 앙코르와트도 폭력이 이룩한 거대한 건축물 강력한 폭력 무자비한 폭력 집단에 의한 불가항력의 폭력이 희랍의 신전을 건축하고 힌두교의 사원을 건축하였으니 인간이 창조해온 수많은 신은 당신들의 신전에서 울어야 마땅하다 광기 없이 어떻게 집단이 집단을 죽일 수 있으랴 1982년 친이스라엘 레바논 민병대원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습격했을 때 죽은 1000여 명 중 성인 남자는 그렇다 치고 여자와 아이들은 땅을 잃어버린 자의 딸과 손자라는 죄밖에 없다 1988년 이라크에 투하된 독가스로 쿠르드족 수백 명이 살해되었을 때 아기를 안고 죽은 아버지는 그렇다 치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 죽은 아기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죄밖에 없다
지상의 그 어떤 성벽도 폭력을 막기 위한 폭력의 벽 우리는 그 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유쾌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지상의 그 어떤 거대한 구조물도 폭력을 상징하기 위한 폭력의 구조물 우리는 그 구조물 앞에서 그림을 그린다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폭력 없는 시대는 없었으니 마하비라*여 살해당한 사람과 살인한 사람은 죽어서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가
폭력 없는 사회가 존재했던가 광기 없는 사회가 존재할 것인가
* 마하비라(BC 599~527):자이나교를 일으킨 24명 가운데 마지막 인물. 자이나교는 금욕적인 생활을 하라고 가르치면서 동물의 생명을 빼앗거나 짐승 고기를 먹는 것을 극단적으로 금하는 등 비폭력주의 교리를 갖고 있다. 윤회도 자이나교의 기본 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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