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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혜경 시인 / 베란다 B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9.

황혜경 시인 / 베란다 B

 

 

너는 항상 베란다 B에 있다 서 있다 기다리고 있나보다

나는 항상 베란다 B에 있는 너를 향해 가느라 있다

 

~답게 ~답지 못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수월해지고

실체는 실재적으로 몸을 회복해야 쾌청하다며 너는 말했지

다행이다 너의 쾌청

 

거울 앞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니? 처음에 나는 나를 생각하다가 너를 생각해 너는?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깃든 너를 바라봐

 

너는 아직도 베란다 B에 있다 서 있다 잠시 앉았다가 또 기다리나보다

나는 아직도 베란다 B에 있는 너를 뒤로 못하고 앞에 두고 가느라 있다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나열되느라 너와 나는 무수하게 줄을 서 있거나 여러 번 반복적으로 놓여있고

시간이 매듭지어 놓은 딱딱한 꼭짓점들이 우리의 구도를 미완에서 완결 쪽으로 그리고 있고

 

나는 발코니 A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전봇대 뒤에서

내장이 쏟아질 듯 울고 있는 한 여자를 본 적이 있는데

남자는 저만큼 점(點)이 되어 멀리로 가고 있다고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울음의 선혈이 붉게 한 번 더 감싸고 있었다

어둠 바깥으로 두 번째 자궁의 내막처럼

그리고 노을이 번지던 저녁

빨대로 불어 띄우던 본드 풍선처럼

소리가 붉었다 만지면 끈끈하게 색이 몸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너는 항상 베란다 B에 있고 베란다 B는 어디에든 있고

너는 기다리고 있고 나는 너의 무엇을 계속 향해 갈 것이다

발코니 A라고 했는지 베란다 B라고 했는지

망각보다 우리가 더 가능해질 때까지

 

웹진 『시인광장』 2015년 9월호 발표

 

 


 

황혜경 시인

인천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2010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느낌 氏가 오고 있다』(문학과지성사, 2013)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