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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시인 / 텔레비전, 나의 근대
눈을 감아봐 암전의 느낌이 들 때까지 한참을 감았다 뜰 때의 눈부신 새로움 경이롭게 펼쳐지는 세상 그것이 내 유년의 텔레비전이야
일곱 살 혹은 여덟 살 무렵이었을 거야 산서면 신창리 외갓집에서 맞는 저녁은 가슴 가득히 두근거리는 기쁨이고 또 고통이었지 가녀려 보이는 늘씬한 네 다리가 지탱하는 주름문 달린 윤기가 흐르는 나무상자 그 안에 담긴 흑백 진공관 텔레비전 몽환 같은 붉은 어스름이 동구 밖에서부터 물들어 올 무렵 나무상자에 난 작은 구멍으로 열쇠를 꼽아 돌리고 두 손으로 주름문을 잡아 좌우로 열어젖히면 놀랍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곤 했지 텅 빈 브라운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참을 기다리면 텅하는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몇 차례의 흔들림 혹은 비틀림 이윽고 화면 가득 메운 흑백 동영상의 서사 내겐 꿈같은 세상과의 소통이었어 그래서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그 개안의 시간을 날마다 기다렸어 너무나 기다렸지
새로운 세상을 여는 관문의 열쇠를 가진 작은 외삼촌 조금은 퉁명스럽고 좀체 웃는 표정이 없던 그래서 무섭기만 했던 그는 내가 숭배하지 않으면 안되는 제사장이고 영매였지 그를 통해서만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이 열렸거든 삼촌의 귀가가 늦은 날이면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기다렸지 그런 그가 더없이 미웠어 돌아온 그가 더없이 반가웠어 그것이 나의 근대적 체험이야
다시 눈을 감아봐 그렇게 한참을 있어봐 뭐가 보여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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