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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지우 시인 / 구사일생(九死一生)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6.

황지우 시인 / 구사일생(九死一生)

 

 

"남산(南山) 제1호선 터널. 붕괴 직전"이라고 해도

차량들은 여전히, 태연히.

 

어쩌면 붕괴될지도 모를 개연성이  있는, 남산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제1호선 터널,  그 칙칙하고 컴컴하고 매캐하고 긴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다 뒈져도 나만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을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건지.

 

이기심(利己心)은 얼굴에 철판을 깔게 하고

양심(良心)은 가슴에 기부스를 하고

 

서울 사람들을 세련되게 하는 것은 신경질과 무감각이다.

심장에 맹장염이 걸릴 수도 있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 시인 / 근황(近況)

 

 

벗이여, 나의 근황(近況)은 위독하다. 위문  와다오. 붉고 흰 국화꽃 들고. 장의사집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섬찌ㅅ섬찌ㅅ하다. 구긴 종이가 휴지통에  정확하게 들어가주지 않은 그날은 내내 불길하고, 왜 나는 자꾸자꾸 예시(豫示)받으려 하는지. 왜 자꾸 목숨이 한숨인지, 나는 모르겠다. 벗이여, 지난 여름, 그대는  범람(氾濫)하는 강(江)가에서 무슨 소리를들었느냐. 우리들 목숨의  치수 바로 밑에 출렁이는  유량(流量)을 보았느냐. 상 황 통제 불 능 상황통제불능. 응답은 없었다.  영원히. 1984년, 무사안일한 위험 수위 위로 대홍수의 날들은 가고, 1988년, 대망(大望)도 빨리  지나가라. 우리들 패인 분지에 헐벗은 이재민으로 남아 울리라. 지나가라. 황폐한 축제여.  노예들의 환희여. 아, 대한민국(大韓民國), 대한민국(大韓民國) 헌법(憲法)은 여성명사(女性名詞)며 대한민국(大韓民國) 현대사(現代史)는  변태성욕자(變態性慾者)의병력(病歷)이다. 누가 이 여인을  범하랴.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누가 이 여인을.그대 몸에 깊은 구멍  있도다. 상처인가 통로인가. 깊고 굶주린 구멍. 물 질척거리는  그대 영혼의잔잔한 오물이여. 폭등하는 첨탑이여. 교회는 자본주의와 성교(性交)한다. 아 마침내 땅 끝까지 왔구나. 우글우글하게 까놓았네! 그들의  먹이는 불안한 신흥 중산층이다. 그대 목마른 영혼을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한 값을 내라. 가까이 오라. 양변기에 앉아  똥 누는 자들이여. 밀리고 밀린 똥냄새가 맡고 싶구나.  그대들은 이주일(李朱一)에게 침을 뱉고 그는 돈을  번다. 이게 원리원칙(原理原則)이야. TV 시청료를 내지 맙시다. 현실을 착색(着色)하지  맙시다. 확실한 것은, TV는 공범자(共犯者)다. 벗이여, 이제 나는 시(詩)를 폐업처분하겠다. 나는  작자미상(作者未詳)이다. 나는 용의자이거나 잉여인간이 될 것이다. 나는 그대의 추행자다. 아아, 나는 시(詩)의 무정부주의를 겪었고시(詩)는 더 이상 나의 성소(聖所)가  아니다. 거짓은 나에게도 있다. 우리는 다시 레이건 치하(治下)에서 산다. 극악무도한 놈! 젊은 김(金)순경이 변심(變心)한 애인집 일가를 몰살하고 그도 곧게뻗은 사건 있지.  그것도 우리 사회가 성숙해가는 데 거쳐야  할 방역(防疫)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그놈은 구조기능주의자임에 틀림없어. 아가리를 찢을 놈. 그들과 나는 덮여진 형제살해(兄弟殺害)의 시대에 산다. 우리는 연루자다. 벗이여 우리는  코미디언도 순교자도 못 된다. 혹은 모든 시대에 코미디언은 순교자의  대칭이다. 김지하를 보라. 그대가  캄캄한 날의 그의 옥중서한(獄中書翰)을 대독해봐. 나는 시(詩)의 현교(顯敎)를 믿었다. 나는  곧 개종한다. 나는 거칠어질것이다. 나는 종잡을 수 없다. 나는 왜 성조기(星條旗)가 독나방의  날개로 보이지. 악몽이여. 흉악한 시절이여. 내 가슴 뜨거운 문신(文身)이여. 이것은 증오일까 오류일까. 나는 나 이외의 삶을 범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모르겠다. 나는 혼수상태다. 벗이여. 위문 와다오. 우리 결별하자.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게로, 민음사, 1985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본명은 황재우.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문학활동을 시작.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당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