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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 / 묵상(黙想) 1
아름다움을 위하여 나는 날 버렸지 어리석음을 위하여 나는 날 버렸지 처녀성을 위하여 순정을 위하여 개 같은 운명을 위하여 불행은 부동자세로 다가오고 나는 종말적으로 울며 허옇게 드러눕는 내 죽음에 동참했었지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나는 이 지상에 무덤으로 누워 망망한 대해 내 눈물의 바다를 보았지 시퍼렇게 떠오르는 나를 보았지.
사람 그리운 도시에, 나남, 1988
천양희 시인 / 묵상(黙想) 5
나는 지상에 발묶인 한 인간의 딸입니다 오랜 절망을 사칭하고 자유를 형벌이라 매도하며 세상의 감옥 탈출을 노리는 죄인입니다 한번 살고 죽어버릴 인간의 탈을 쓰고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증오했습니다 누군가 남의 사랑을 엿보고 누군가 남의 뜰을 짓밟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수천 번 죽였습니다 삶은 나무처럼 가꾸는 것이라고 미래는 해처럼 떠오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긴 혀를 마음으로 수만 번 잘랐습니다 바람이 분다고 바람 속을 물결이 친다고 물결 속을 흔들리며 빠지며 아무래도 무엇인가 부끄러운 흔적만 남겼습니다
신이여 나의 부동자세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 그리운 도시에, 나남,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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