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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호승 시인 / 눈물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7.

정호승 시인 / 눈물꽃

 

 

봄이 가면 남쪽 나라 눈물꽃 피네

보리피리 불면 보리꽃 피고

까마귀 울어대면 감자꽃 피더니

봄은 가고 남쪽나라 눈물꽃 피네

눈물꽃 지고나면 무슨 꽃 필까

종다리 솟아 날면 장다리꽃 피고

눈물바람 불어대면 진달래꽃 피는데

눈물꽃 지고나면 무슨 꽃 필까

눈물꽃은 모래꽃 남쪽 나라 꽃

눈물꽃 씨앗 하나 총 맞아 죽어

봄이 가면 남쪽 나라 눈물꽃 피네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정호승 시인 / 눈사람

 

 

사람들이 잠든 새벽 거리에

가슴에 칼을 품은 눈사람 하나

그친 눈을 맞으며 서 있습니다.

품은 칼을 꺼내어 눈에 대고 갈면서

먼 별빛 하나 불러와 칼날에다 새기고

다시 칼을 품으며 울었습니다.

용기 잃은 사람들의 길을 위하여

모든 인간의 추억을 흔들며 울었습니다.

 

눈사람이 흘린 눈물을 보았습니까?

자신의 눈물로 온몸을 녹이며

인간의 희망을 만드는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그친 눈을 맞으며 사람들을 찾아가다

가장 먼저 일어난 새벽 어느 인간에게

강간당한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사람들이 오가는 눈부신 아침 거리

웬일인지 눈사람 하나 쓰러져 있습니다.

햇살에 드러난 눈사람의 칼을

사람들은 모두 다 피해서 가고

새벽 별빛 찾아 나선 어느 한 소년만이

칼을 집어 품에 넣고 걸어갑니다.

어디선가 눈사람의 봄은 오는데

쓰러진 눈사람의 길 떠납니다.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비평사, 1979

 

 


 

 

정호승 시인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새벽편지》 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이, 어른이 읽는 동화로 《연인》《항아리》《모닥불》《기차 이야기》 등이, 산문집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