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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규리 시인 / 폭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4.

최규리 시인 / 폭염

 

 

 스커트가 펄럭인다 끓고 있는 그녀의 세면대는 그에게서 온 편지들로 고여있다 하수구로 빠져나가지 못한 울음은 기억을 녹인다 어깨로 흘러드는 촛농은 하얗게 부서지고 커피포트에 말려든 낮은 웃었다 백열등이 깨지며 발등에 꽂힌 이빨들, 소금사막으로 뒤덮인 방들이 눈썹을 붙잡고 플러그를 꽂았다 혈관을 태우는 눈동자, 별이 지지 않는 주소를 적고 텅 빈 심장으로 봉인한다

 

푸른 쓸개즙이 흐르는 밤을 걸어 춤추는 스커트

 

 


 

 

최규리 시인 / 부레를 찾는 사람들

 

 

 테라스에 앉아 턱을 괴고 창밖을 봐요. 언제부턴지 비는 내리고 비가 내려요. 나무 뒤에 숨어 담배 피우던 소년은 기타를 메고 맨홀 속으로 들어가요. 비는 내리고 빗속을 뚫고 허공에 떠다니는 보도블록 조각들이 건조해요. 언제부턴지 비가 내려요. 맨홀 뚜껑을 열고 사람A가 들어가요. 비는 내리고 맨홀 뚜껑을 열고 사람B가 들어가요. 비는 내리고 맘에 갇히고 상어떼들은 부레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어요.

 

 거친 숨소리로 핏빛 이빨을 드러내며 스쳐가네요. 맨홀 뚜껑이 열리고 나는 눈을 감고 안을 들여다봐요. 아스팔트는 와락 갈라지며 수몰된 도시가 펼쳐졌어요. 정지된 눈동자들은 서로의 가슴을 도려내고 기억을 지워요. 지워질수록 우리들은 수면 위로 떠오를까요? 사람들은 끝없는 행진을 해요. 그 뒤를 무작정 따라 걸어요. 빗속에서 빛으로 감싼 어깨를 따라 걸어요.

 

2016년 《시와 세계》 등단시

 

 


 

최규리 시인

서울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시와 세계》 로 등단. 시집으로 『질문은 나를 위반한다』 (시와세계, 2017)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동서문학회 회원, 시와세계 시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