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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니 시인 / 사랑,니를 뽑다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주사를 놓는다 깊은 바늘이 더 아프다 쓸 수 있는 기구는 다 동원한 것 같다 뽑고 갈고 잡아 뜯고 당기고 사랑,니를 흔들며 애원한다 내 안에 뿌리를 깊이 내린 너 때문에 비뚤어지고, 염증이 생기고, 아프다 니를 뽑아내기 위해 피를 쏟고, 식은땀을 흘리고, 안간힘을 쓴다 삼십분쯤 지났을까 너는 부러져버린다 난감한 의사의 깊은 한숨소리 사랑,니를 갈아내는 소리를 들으며 입술이 짓눌리는 아픔을 견뎌낸다 부러진 니를 잡고 흔드는 의사의 숨이 가빠진다 한 시간이 넘는 실랑이 끝에 항복을 선언한다 좁쌀만 한 니를 남기고 잇몸을 봉합한다 너는 뼈에 녹아들 거라고 한다 영영 떠나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결국 내 안에 남을 것이다 마취가 풀렸다 고통을 견디는 주사를 다시 맞아야 한다 살을 찌른다, 아프다 피 묻은 너의 조각이 나를 본다
월간 《see》 2016년 5월호 등단시
김고니 시인 / 신호등이 꺼진 네거리에 누웠다
길은 굳어진 뼈마디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빨간 불이 켜지면 멈추는 것은 삶에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파랗게 불이 켜진다고 꼭 어딘가 발을 옮겨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까
먹구름이 낀 하늘이 덜 어둡다는 걸 왜 몰랐을까 파란별이 더 뜨거운 건 어른들만 아는 비밀
신호등이 꺼진 네거리에 누웠다 길에 누우면 안된다고, 차들이 숨을 헐떡이며 달리는 도로에 누우면 안되는 거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길은 굳어진 뼈마디처럼 삐그덕 소리를 내며 일어서고
파란별이, 뜨거운 별 하나가 꺼진 신호등 불빛 대신 반짝인다
계간 『아라문학』 2019년 여름호 발표
김고니 시인 / 먼지뭉치
속눈썹 위에 내려앉은 먼지,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뭉쳐 사랑이 된다
그리움이 쌓이면 웅크린 어깨가 되고 새의 날개가 되지 못한 나는, 바람에 떠밀려 불쑥 고개를 내민 먼지뭉치
가로등이 만나면 길이 되고 어둠이 모이면 별이 된다
새의 날개가 되지 못한 나는, 바람에 떠밀려 울컥 숨을 뱉어내는 먼지뭉치
계간 『아라문학』 2019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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