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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 / 곡비(哭婢)
사시사철 엉겅퀴처럼 푸르죽죽하던 옥례엄마는 곡(哭)을 팔고 다니는 곡비(哭婢)였다.
이 세상 가장 슬픈 사람들의 울음 천지가 진동하게 대신 울어주고 그네 울음에 꺼져버린 땅 밑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별똥 주워먹고 살았다. 그네의 허기 위로 쏟아지는 별똥 주워먹으며 까무러칠 듯 울어대는 곡(哭) 소리에 이승에는 눈 못 감고 떠도는 죽음 하나도 없었다. 저승으로 갈 사람 편히 떠나고 남은 이들만 잠시 서성일 뿐이었다.
가장 아프고 가장 요염하게 울음 우는 옥례엄마 머리 위에 하늘은 구멍마다 별똥 매달아 놓았다.
그네의 울음은 언제 그칠 것인가. 엉겅퀴 같은 옥례야, 우리 시인의 딸아 너도 어서 전문적으로 우는 법 깨쳐야 하리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 까무러치게 대신 우는 법 알아야 하리.
찔레, 전예원, 1987
문정희 시인 / 기다리던 답장
젊은날엔 카키색 군복을 입고 양구나 포천 어느 고지에서 불침번을 서던 용감하고 씩씩한 군인 아저씨
여학교 시절, 내가 보낸 위문편지에 가슴만 설레이다가 반백이 된 오늘에야 비로소 답장 하나 보내왔어요.
40여년 동안 윤내어 닦던 군화 날카롭게 갈던 무기로 현해탄이나 압록강 지키지 못하고 한부모를 가진 우리가 우리 가슴 겨냥했던 것 그것이 부끄럽다고 고백해왔어요. 그것이 기막히다고 고백해왔어요.
찔레, 전예원, 1987
문정희 시인 / 꿈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다.
남편은 실업자 문학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 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일주 떠났다. 아테네 항구에서 바다가재를 먹고 그 다음엔 로마의 카타꼼베로! 검은 신부가 흔드는
촛불을 따라 들어가서 천년 전에 묻힌 뼈를 보고 으스스 떨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또 떠나리.
아! 피사, 아시시, 니스, 깔레……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지고 발이 부르텄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꾼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몽땅 들고 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찔레, 전예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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