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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남철 시인 / 이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6.

박남철 시인 / 이혼

 

 

북부지원 춘천막국수집에서 칼국수를 먹으며 울었네,

 

사랑하는 예쁜 마누라와 아들을 보며 칼국수를 먹으며 울었네,

 

어머님……

 

러시아집 패설, 청하, 1991

 

 


 

 

박남철 시인 / 자유(自由)……로운 잡념(雜念)

 

 

1

 

듣고 싶다, 말이 듣고 싶다, 말

말, `말'뿐이 아닌 말 한 마디 듣고 싶다

 

……과 그것은 자유(自由)지만 그것은 그것보다 더 그러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는 생각, 생각하면 무엇하나, 이건 이미 소문(所聞)에 나 버린 워낙 전폭적인 `말씀'인데

 

산(山)은 산(山)이고

 

물은 물이지……그 밖에 더 무슨 할말 있겠는가……는 생각, 또 생각, 생각하면 무엇하나, 이 역시 이미 소문(所聞)에 나 버린 아주 숙정(肅靜)된 말씀인데…… 그래? 그렇다면

 

호랑이는 호랑이고

 

포수는 포수로다……산(山)에

가야 범을 잡지, 잡지(雜誌)는 잡념(雜念)이 되고

그렇다고 서부의 사나이는 어디 ㄸㅗㅇ 안 누고 산다더냐

 

2

 

민주주의─머릿수 세기에 여념(餘念)이 없는

저 광기(狂氣)─는 너무 늦기 전에, 싹, 근절(根絶)되어야 한다

장사꾼, 기독교도(基督敎徒), 암소, 여자, 영국인(英國人),

그 밖의 민주주의자들은 모두 한패이다……

는 생각, 생각해서 무엇하나, 이것도 이미

Nietzsche가 발설해 버린 이미 `책'의 `말씀'인데

 

역사(歷史)의 표어는 ꡒ동일한 것이 다

른 방식으로ꡓ라는 말……일 것이다

는 생각, 생각하면 무엇하나, 이것 역시 이미

Schopenhauer가 떠들어 버린 이미 `책'에 있는 `말씀'인데,

그래? 그렇다면

 

식민지(植民地) 정치(政治)의 표어는? 아

 

아서라, 아서라, 떡이나 먹어라 남철(南喆)아

쳐라, 남철(南喆)아, 박수나 쳐대거라

 

Tomorrow never comes,

Ignorance is bliss…… 아

 

아니, 아니, 이건 다만 서양 속담들일 뿐이고

에……또……좌우지간 정치(政治) 얘기는 하지 말자

 

3

 

좌우지간, 어쨌든 6백만원은 있어얄 텐데……우리의

입 밖으로 못 나오는 정충(精蟲)들은 도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우리는

 

결혼해도 불행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불행하다

혼자 있어도 불행하고 사교장(社交場)에 있어도 불행하다

우리는 온기(溫氣) 때문에 모여 있는 고슴도치와 같아서,

너무 가까이 있어도 불쾌하고 너무 떨어져 있어도

불쾌하다……아니

 

아니, 이것 역시

Schopenhauer 영감의 독설(毒舌)일 뿐인 것이고

 

4

 

좌우지간 어쨌든, 6백만원은 있어얄 텐데……

6백만원! 6백만원! 6백만원의 사……

랑, 내일(來日)이면 서른이 되는, 아뿔싸, 내 나이여!

시간­분­초, Tomorrow­never­comes!

조하다초조하다,지극히,초조하다초가집처마끝에매달린고드름

같은 내 초조(焦燥)여 `!'

 

……그렇다고 어린애들은 태어나야만 할

죄(罪)라도 졌는가……아니다, 이 경우

죄인(罪人)은 바로 여자이다

이자들의 무분별한 매력이

또 남자를 생식(生殖)으로 유인─이것 역시

Schopenhauer 영감의 독설(毒舌)일 뿐인......것이다

 

5

 

아 그러나 나는

얻고 싶다, 제발 `시(詩)'만은 얻고 싶다, 시(詩)

시(詩), 시(詩)가 아닌 시(詩) 한 편만 얻고 싶다

 

……아버지가 자전거 뒤에 시(詩) 같은 아들을 태우고서 신나게 싱싱싱 신나게 달려간다─

─아부지, 좆나게 밟아! 좆나게! 더!*

 

이것, 역시, 이미, 소문(所聞)에 나 버린 얘기……아닌가?

 

* 『동아일보(東亞日報)』, 「교단일기(敎壇日記)」 중에서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잠실통신

 

 

1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도 없다

그저 몸뚱아리만 있어 다만 꿈틀거릴 뿐이다

그래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징그러울 뿐이다

 

2

 

차들이 달린다 1․2․3․4․5……

잠실의 잠사(蠶舍)들은 단지를 이루고, 고요하다

15층 고층 단지에는 좀 굵은 누에들이 15평 단지에는

시시한 누에들이 살고 있다

 

3

 

일체 말이 없다

벌써 6개월째 거시기 같지 않은 거시기만이 들어온다

나가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누에일보와 싸워 보겠느냐고 으름짱이다

신문 안 볼 이유(理由)를 달라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외쳐지지는 않는다

 

4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도 없다

신문을 보면 중견 누에 시인들이 뭐라고뭐라고

설교를 하고 있다 거기에는 사랑과 평화

잠중(蠶衆)…… 뭐 대체로 그런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5

 

우리들은 모두가 나방이 될 꿈을 꾸고 있다

열심히 부지런히…… 고치를 만들어 보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절대로 나방이 되지는 못한다

 

간혹 어떤 누에가 나방이 되었다는 소문이 쥐약처럼 뿌려진다

 

6

 

나 그레고리 잠사 누에는 오늘 또 한 늙은 원로 누에로부터 `야­너, 목에­힘­좀­더­빼!'라는 꾸중을 듣고 돌아왔다

 

7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누에답지 못하고 덩치가 너무 크다

`빈처(貧妻)'인 마누라 누에는 술을 너무 마신다고 앙탈이다

 

8

 

나 같은 누에들은 정말 언제나 용(龍)이 될까

매일매일 지하로 달리는 기계용(機械龍)을 타고, 출퇴근, 해 보지만

 

오늘도 어린 누에들에게 잠비어천가(蠶飛御天歌)를 가르쳐 보지만

 

꿈꾸지 마라 너희들은 절대로 용(龍)이 될 수 없다(용(龍)이란 아무나 되는 게 아냐 절대로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니까)

이사장(李社長) 누에의 거대한 신발이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비웃고 있었다

 

9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도 없다(그럼 문둥인가?)

그래도 나 그레고리 잠사 누에는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싸구려 누에출판사에서 나온 반시대적 고찰을 읽으며

최잠호라는 어떤 누에가 쓴 제법 멋있고 진솔한 시(詩)를 읽으며

 

나도 한번 따라 써 본다─그러나 시(詩)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분노가 치솟을 뿐이다……)

 

냐느아을`랑사'연과이들희너아들로포의망욕이라어들냐이들견중연과이들희너아들이아의주지(主地)이라어들……만지렸버어되가사잠리고레그라놀고듣를리소그국결는나고였리소한못지롭기향국결는리소`직지뿌'온나서에위……라더시하랑사을만자는르따를리꼬,를리꼬은들견중고에회사느어라더시리푸찌나이살맛이,직지뿌,은들로원고에회사느어고하아좋를기시하나`사심(思深)'은들견중고에회사느어……(까니라보해말를기시거음다그서어냐이말단쨌어서래그)고하명분에임들자는먹나`주안(住安)'미이란이들견중나에회사느어(라봐해말을음다그서어냐이말단쨌어서래그)……(다린들라이`견중(犬中)←견중(堅中)'꾸자는에귀내데런그)다있은들로원고에회사느어고있은들견중고에대시느어………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朴南喆) 시인

1953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9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시 〈연날리기〉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와 『반시대적 고찰』(한겨레, 1988 / 세계사, 1999) , 『러시아집 패설』(청하, 1991)와『자본에 살어리랏다』(창작과비평사, 1997), 『바다 속의 흰머리뫼』 (문학과지성사, 2005), 『제1분』(문학수첩, 2009)과 시선집 『생명의 노래』(문학세계사, 1992) 와 박덕규와의 공동시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청하, 1982)와 박남철 비평시집  『용의 모습으로』 (청하, 1990)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