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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상화 시인 / 가장 비통한 기욕(祈慾)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5.

이상화 시인 / 가장 비통한 기욕(祈慾)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가도다

잊음 속에 있는 간도와 요동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아가도다

자갈을 밥으로 해채를 마셔도

마구나 가졌으면 단잠을 얽을 것을―

인간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주린 목숨을 뺏어가거라!

 

아, 사노라, 사노라, 취해 사노라,

자포 속에 있는 서울과 시골로

멍든 목숨 행여 갈까, 취해 사노라

어둔 밤 말 없는 돌을 안고서

피울음 울어도 설움은 풀릴 것을―

인간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취한 목숨, 죽여 버려라!

 

월간 『開闢(개벽)』 1925. 1

 

 


 

 

이상화 시인 / 거러지

 

 

아침과 저녁에만 보이는 거러지야!

이렇게도 완악하게 된 세상을

다시 더 가엾게 여겨 무엇하랴 나오너라.

 

하느님 아들들의 죄록(罪錄)인 거러지야!

그들은 벼락맞을 저들을 가엾게 여겨

한낮에도 움 속에 숨어 주는 네 맘을 모른다 나오너라.

 

월간 『開闢(개벽)』  1925. 5

 

 


 

 

이상화 시인 / 겨울 마음

 

 

물장수가 귓속으로 들어와 내 눈을 열었다.

보아라!

까치가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서 울음을 운다.

왜 이래?

서리가 덩달아 추녀 끝으로 눈물을 흘리는가.

내야 반가웁기만 하다 오늘은 따스겠구나.

 

월간 『開闢(개벽)』 1926. 1

 

 


 

 

이상화 시인 / 곡자사(哭子詞)

 

 

웅희야! 너는 갔구나

엄마가 뉜지 아빠가 뉜지

너는 모르고 어디로 갔구나!

 

불쌍한 어미를 가졌기 때문에

가난한 아비를 두었기 때문에

오자마자 네가 갔구나.

 

달보다 잘났던 우리 웅희야

부처님보다도 착하던 웅희야

너를 언제나 안아나 줄꼬.

 

그러께 팔월에 네가 간 뒤

그 해 시월에 내가 갇히어

네 어미 간장을 태웠더니라.

 

지나간 오월에 너를 얻고서

네 어미가 정신도 못 차린 첫 칠날

네 아비는 또다시 갇히었더니라.

 

그런 뒤 오온 한 해도 못 되어

갖은 꿈 온갖 힘 다 쓰려던

이 아비를 버리고 너는 갔구나

 

불쌍한 속에서 네가 태어나

불쌍한 한숨에 휩쌔고 말 것

어미 아비 두 가슴에 못이 박힌다.

 

말 못하던 너일망정 잘 웃기 따에

장차는 어려움 없이 잘 지내다가

사내답게 한평생을 마칠 줄 알았지.

 

귀여운 네 발에 흙도 못 묻혀

몹쓸 이런 변이 우리에게 온 것

아, 마른 하늘 벼락에다 어이 견주랴.

 

너 위해 얽던 꿈 어디 쓰고

네게만 쏟던 사랑 어디 줄꼬

웅희야 제발 다시 숨쉬어 다오

 

하루 해를 네 곁에서 못 지내 본 것

한 가지도 속시원히 못 해준 것

감옥방 판자벽이 얼마나 울었던지.

 

웅희야! 너는 갔구나

웃지도 울지도 꼼짝도 않고.

 

불쌍한 선물로 설움을 끼고

가난한 선물로 몹쓸병 안고

오자마자 네가 갔구나.

 

하늘보다 더 미덥던 우리 웅희야

이 세상엔 하나밖에 없던 웅희야

너를 언제나 안아나 줄꼬―

 

조선문단, 1929. 6

 

 


 

이상화 [李相和, 1901.4.5~1943.4.25] 시인

1901년 대구(大邱)에서  출생.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는 상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백아(白啞). 경성 중앙학교에서  수학. 1921년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單調」, 「가을의 風景」, 「末世의 欷嘆」을 발표하며 등단. 일본의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 및 프랑스문학을 공부하고  1924년  귀국. 《개벽》誌를 중심으로 시·소설·평론 등을  발표하고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면서 신경향파에 가담.  《개벽》, 《문예운동》, 《여명》,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조선문단》, 《조선지광》 등의 동인. 시인이며 작가,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번역문학가, 교육자, 권투 선수로도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