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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병기 시인 / 금강(錦江)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4.

이병기 시인 / 금강(錦江)

 

 

산 곱고 물도 고운 우리나라 이 강산(江山)

오대(五大) 장강(長江)의 금강(錦江)이 하나로서

비단결 같은 이 강(江)이 이 어름에 비껴 있다

 

삼국(三國)을 통일하고 뽐내던 신라(新羅) 끝에

왕건(王建) 태조(太祖)도 영웅은 영웅이지만

개태(開泰)에 원찰(願刹)을 두고 풍수설(風水說)엔 맺혔다

 

같은 이 겨레도 남북(南北)이 다 형제다

나뉘고 합함은 한때의 일이었다

오로지 투쟁만으로 이 세계를 지닐까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기 시인 / 꽃

 

 

꽃을 보려 하고 봄 오기를 바랐더니

새우는 찬바람 끝에 겨우 피려 하던 꽃이

덧없이 퍼붓는 비에 그저 지고 말아라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기 시인 / 낙엽(落葉)

 

 

담머리 굴참나무 그늘도 짙을러니

높은 가지 끝에 한두 잎 달려 있고

소소리바람이 치는 벌써 가을이구려

 

지는 잎 너도 어이 갈 바를 모르고서

바람에 흩날리어 이리저리 헤매느냐

그러다 발에 밟히어 흙이 되고 마느냐

 

날아드는 잎이 뜰앞에 가득하다

바람이 자고 달은 고이 비쳐 들고

밤마다 서리는 내려 하얗게도 덮는다

 

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

 

 


 

 

이병기 시인 / 난초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앉아 책(冊)을 앞에 놓아 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기(李秉岐) 시인 / 1891∼1968

호: 가람(伽藍). 시조 시인. 국문학자. 전북 익산에서 출생. 1913년에 관립 한성 사범 학교를 졸업하고, 보통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고문헌 수집과 시조 연구에 전념하였다.1921년에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하였고, 1926년에 <시조란 무엇인가>를 발표한 이래 현대 감각의 시조로 침체된 시조 문학을 크게 일으켰다. 1930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위원을 거쳐 1935년에는 조선어 표준어 사정 위원이 되었고, 그 후에<가람 시조집>을 발표, 자연의 생생한 묘사를 통하여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1942년에는<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어 1년여 동안 복역하다가 석방된 후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면서 고문헌 연구에 몰두하였다. 광복 후 상경하여 미군정청 편찬과장, 서울 대학교 문리과 대학 교수 등을 거쳐 1954년에는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그 해 백철과 공저

로 <국문학 전사>를 간행하였다. 그는 현대 자유시에 압도된 시조의 부흥에 큰 공헌을 하였고, 저서에는 <국문학 개론> <가람 문선>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