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박목월 시인 / 노대(露臺)에서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4.

박목월 시인 / 노대(露臺)에서

 

 

발코니에서 건너다 보는 숲에

밤의 나무는 적막하다.

밑둥까지 볼 수 있는 알몸의

밤의 나무는 고독하다.

 

밤일수록 떠 보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

앙상한 팔과 마른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젓는 나무.

 

죽음보다 깊이 잠든 수녀원의

눈도 내리지 않는, 냉랭한 자정(子正)에

밑둥까지 드러낸 알몸은 차갑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은 두렵다.

 

무순(無順), 삼중당, 1976

 

 


 

 

박목월 시인 / 노래

 

 

고모요,

고모집 울타리에

유달리 기름진 경상도의 뽕잎,

그 뽕잎에 달빛.

가난이 죄라지만

육십 평생을,

삼십리 밖을 모르고

살림에만 쪼들린.

손님 상에

모지러진 숟갈.

고모요,

칠칠한 그 솜씨로도

못 휘어잡은 가난을

산천은 어쩌자고

저리도 기름지고

쑥국새는 아침부터

저리도 우능기요.

고모요,

막내 고모요,

화천(花川)골 진달래는

지천으로 피는데

사람 평생

잘 살믄 별난기요.

그렁

저렁

살믄 사는 보람도 서고,

아들이 컸잖는기요.

저 덩치 보이소.

며누리 보고 손자 보믄

사람 일 다 하는 거로

유달리 널찍한

경상도 뽕잎에

밤이슬은 왜 이리도 굵은기요.

 

-<경상도의 가랑잎> 민중서관, 1968

 

 


 

 

박목월 시인 / 논두렁길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야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었다.

태어나는 그날부터

가슴에 서리기 시작한 것

얼굴을 문지르며

논두렁길을 걷는다.

따지고 보면 밑도 끝도 없는

다만 가슴에 안개같이 서려

늘어나는 주름살을 쓰다듬으며

논두렁길을 걷는다.

아무리 헤아려도 아귀가 맞지 않는

그것을 인생이거니 체념한

씁쓸한 얼굴을 찌푸리고

논두렁길을 걷는다.

논두렁길은 꼬불꼬불 뻗어

마을과 마을을 이어 있다.

때로는 안개에 서려 보름달이 뜨면

실로 허전한 걸음으로

억울하고 원통할 것도 없는 얼굴들이

논두렁길을 걷는다.

 

-<경상도의 가랑잎>(1968)- 민중서관

 

 


 

 

박목월 시인 / 눈물의 훼어리

 

 

흐릿한 봄밤을

문득 맺은 인연의 달무리를

타고. 먼 나라에서 나들이 온

눈물의 훼어리.

  (손아귀에 쏙 드는 하얗고 가벼운 손)

 

그도 나를 사랑했다.

옛날에. 흔들리는 나리꽃 한 송이……

긴 목에 울음을 머금고 웃는

눈매. 그 이름

눈물의 훼어리……

 

사람 세상의

속절없는 그 바람을

무지개 삭아지듯

눈물 젖은 내 볼 위에서

승천(昇天)한 그 이름

눈물의 눈물의 훼어리.

 

사랑하느냐고

지금도 눈물 어린

눈이 바람에 휩쓸린다.

연한 잎새가 펴 나는 그 편으로 일어오는

그 이름, 눈물의 훼어리

 

때로는

문득 내 밤 기도 귀절 속에서

그대로 주르르 넘치는

그 이름

눈물의 훼어리.

 

이제 내 눈은

하얗게 말랐다.

사랑이라는 말의 뜻이 달라졌으므로.

하늘 속에 열린 하늘에

고개 지우고 사는

아아 그 이름

눈물의 훼어리.

 

난(蘭).기타(其他), 신구문화사, 1959

 


 

박목월[朴木月, 1915.1.6~1978.3.24] 시인

본명은 영종(泳鍾). 1916년 경상남도 고성(固城)에서 출생하여 경상북도 경주(慶州)에서 자람. 1935년 대구 계성(啓聖)중학 졸업. 정지용(鄭芝溶)에 의해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과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그밖의 저서로는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음. 1953년 홍익대학교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및 1963년 교수,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역임.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 1978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