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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경 시인 / 질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8.

김진경 시인 / 질문

 

 

이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영어를 모르는 게 까막눈이라고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한 셈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선생님이나 우리나 모두 까막눈이 아닌가요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2강이니 3강이니 4강이 모여

우리나라가 통일을 해야 된다는 둥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군댄다는데

선생님이나 우리나 까맣게 모르잖아요

 

세상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라고

타이르시는 선생님

우리는 모두 색안경을 낀 것이 아닌가요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일본이 어떻다는 둥 얘기하는데

중앙청에 펄럭이는 일장기의 붉은 태양

그것이 푸르른 평화의 빛깔이라고

길거리에 서서 일장기를 흔들었잖아요

 

이것은 사랑의 매라고

종아리를 때리시는 선생님

우리들은 얼마나 더 사랑을 받아야 되나요

20만 동학군이 죽었다는 우금치

한 마을이 몰살당했다는 제암리

어린애까지 학살당했다는 거창군

아, 이루 다 헬 수 없는 마을과 도시

온 땅이 푸른 멍이 들었는데

우리는 얼마나 더 사랑을 받아야 되나요

남의 자유와 남의 평등을 위해

얼마나 더 맞아야 하나요

 

대답해 주세요 선생님

침묵만이 오래오래 눈처럼 쌓여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는데

쓸데없는 귀는 잘라 버릴까요

쓸데없는 눈은 덮어 버릴까요

살아 남아야 한다는 말만이 오래오래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는데

위험한 입은 막아 버릴까요

시끄러운 세상이 너무나 조용해요

대답해 주세요 선생님

 

광화문을 지나며, 풀빛, 1986

 

 


 

 

김진경 시인 / 파랑새

 

 

반 평짜리 독방

붉은 포승에 묶여 누우면

손목을 조이는 냉기

후― 수갑 위에 입김을 불면

하얀 입김의 끝에서 날아오르는, 날아오르는

 

아, 파랑새

파랑새, 벽 위를 푸득이며

부딪치다 파랗게 타올라 어둠을 사르는

거기 지울 수 없는 글자로

누군가, 아 손목을 파고드는

수갑의 고통으로 새겨 놓은

우리들의 노래여

 

뜨거운 남녘땅

가시덤불 위에 타오르다

서대문 구치소 붉은 벽 위에 칼바람으로 부서지다

법원 뒤뜰 반 평짜리 감방 벽에

푸득이며 타오르는 너를 새긴다

우리들의 입김 위에

피흐르는 날개로 살아 있는 파랑새

우리들의 새벽이여

 

우리시대의 예수, 실천문학사, 1987

 

 


 

김진경(金津經.1953.4.9∼ ) 시인

충남 당진 출생.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 시 당선. 우신고교, 양정고교 교사. 양정고교 재직 중이던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 2개월간 수감생활을 했으며, 이후 교육운동에 투신했다. [오월시] 동인.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참교육실천위원장, 통일시대교육영눅소 소장, 계간 [교과연구] 발행인, 문학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발행인,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 등 역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통일시대교육연구소 소장 역임. 2000년 12월 시집 <슬픔의 힘>으로 제5회 시와시문학 작품상 수상. 2006년『고양이 학교』로 프랑스 제 17회 앵코뤼브티블 수상. 2007 한국문학 시부문 신인상.

청소년 문학 <굿바이 미스터 하필>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시집 <광화문 지나며>(풀빛.1986) <지구의 시간> <갈문리 아이들(청사.1984)> <우리 시대의 예수(실천문학사.1987)> <별빛 속에서 잠자다>(청비.1996) <슬픔의 힘(문학동네.2004)> 소설<이리>(실천문학사.1998) 동화집 <은행나무 이야기>(문학동네.1998) <한울이 도깨비 이야기>(우리교육,2000)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은 까치>(문학동네.2000)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