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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시인 / 질문
이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영어를 모르는 게 까막눈이라고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한 셈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선생님이나 우리나 모두 까막눈이 아닌가요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2강이니 3강이니 4강이 모여 우리나라가 통일을 해야 된다는 둥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군댄다는데 선생님이나 우리나 까맣게 모르잖아요
세상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라고 타이르시는 선생님 우리는 모두 색안경을 낀 것이 아닌가요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일본이 어떻다는 둥 얘기하는데 중앙청에 펄럭이는 일장기의 붉은 태양 그것이 푸르른 평화의 빛깔이라고 길거리에 서서 일장기를 흔들었잖아요
이것은 사랑의 매라고 종아리를 때리시는 선생님 우리들은 얼마나 더 사랑을 받아야 되나요 20만 동학군이 죽었다는 우금치 한 마을이 몰살당했다는 제암리 어린애까지 학살당했다는 거창군 아, 이루 다 헬 수 없는 마을과 도시 온 땅이 푸른 멍이 들었는데 우리는 얼마나 더 사랑을 받아야 되나요 남의 자유와 남의 평등을 위해 얼마나 더 맞아야 하나요
대답해 주세요 선생님 침묵만이 오래오래 눈처럼 쌓여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는데 쓸데없는 귀는 잘라 버릴까요 쓸데없는 눈은 덮어 버릴까요 살아 남아야 한다는 말만이 오래오래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는데 위험한 입은 막아 버릴까요 시끄러운 세상이 너무나 조용해요 대답해 주세요 선생님
광화문을 지나며, 풀빛, 1986
김진경 시인 / 파랑새
반 평짜리 독방 붉은 포승에 묶여 누우면 손목을 조이는 냉기 후― 수갑 위에 입김을 불면 하얀 입김의 끝에서 날아오르는, 날아오르는
아, 파랑새 파랑새, 벽 위를 푸득이며 부딪치다 파랗게 타올라 어둠을 사르는 거기 지울 수 없는 글자로 누군가, 아 손목을 파고드는 수갑의 고통으로 새겨 놓은 우리들의 노래여
뜨거운 남녘땅 가시덤불 위에 타오르다 서대문 구치소 붉은 벽 위에 칼바람으로 부서지다 법원 뒤뜰 반 평짜리 감방 벽에 푸득이며 타오르는 너를 새긴다 우리들의 입김 위에 피흐르는 날개로 살아 있는 파랑새 우리들의 새벽이여
우리시대의 예수, 실천문학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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