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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혜 시인 / 일기(日記) 2
앞날을 물들일 피가 맹물이 되었다는 마지막 말은 해방으로 가지 않고 불매듭이 되어 문짝이란 문짝에 모조리 날개를 달고 푸득이고 있습니다. 살아서 죽은 시간을 물감으로 칠해 놓고 시작(始作)에 발을 걸어도 부어 터진 무감각은 박제된 아침만을 밝히고 있습니다.
떠돌이 별, 현대문학사, 1984
김초혜 시인 / 일기(日記) 3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는 듯 일어나 달아나는 나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끓는 피는 열꽃을 피우고 벙어리를 만듭니다. 주소를 뒤적여 나를 찾아도 빈 하늘에 걸리는 손짓,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순전하게 타오르는 손짓입니다.
떠돌이 별, 현대문학사, 1984
김초혜 시인 / 일기(日記) 4
변명으로 끝나는 변명이 아니게 돌아앉아 주시지요. 백지를 닦아 말갛게 비워 두고 쓸쓸히 사는 이를 영겁으로 기다릴 수 있다고 약속해 주시지요. 바람으로 서도 더 청정한 바람으로 소망하게 하시지요.
떠돌이 별, 현대문학사, 1984
김초혜 시인 / 일기(日記) 7
깨어남과 잠든 것이 흙과 꽃의 가름임을 한마음에 두게 되었습니다. 꽃 속에 누운 얻음이 얻음이 아니고 산속에 누운 잃음이 잃음이 아닙니다. 자랑이던 것이 상처가 되어 빈터에 걸려 있습니다 빛 아닌 빛이 빛이라면 구하던 만큼 버리고 싶습니다.
떠돌이 별, 현대문학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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