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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수 시인 / 실바람같이
매달릴 당신의 빈가지를 찾아
헤매는 허공 속,
오직 당신에게만 울릴 내 영혼의
그 먼 흐느낌……
황홀, 세계문화사, 1956
문덕수 시인 / 원(圓)에 관한 소묘(素描)
한 개의 원(圓)이 굴러간다. 천사의 버린 지환(指環)이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 꽃잎들…… 금빛의 수밀도(水蜜桃)만한 세 개의 원(圓)이 천 개의 원(圓)이 굴러간다. 신(神)의 눈알들이다. 어떤 눈알은 모가 서서 삼각형이 되어 쓰러진다. 어떤 눈알은 가로 누운 불기둥이 되어 뻗는다. 한 개의 원(圓)이 팔월 한가위의 달만큼 자라서 굴러간다.
새벽바다, 성문각, 1975
문덕수 시인 / 원(圓)에 대하여
네 품안에 한 알의 씨로 묻혀 너를 닮은 과일로 익고 싶다. 내 물살의 칼날은 꽃잎이 되고 뾰족한 내 돌부리는 만월(滿月)처럼 깎이어 너를 닮아 차라리 타 버리고 싶다. 외길로만 뻗는 이 직선을 휘어잡아다오. 부러져 모가 서는 이 삼각(三角)을 풀어다오. 꺾이어 모가 서는 이 사각(四角)에서 놓아다오. 윤곽이 아니라 그대로 가득 찬 충실이기에 실은 우주도 너를 닮은 충실이기에 네 품안에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로 바다처럼 넘치며 출렁이고 싶다.
새벽바다, 성문각, 1975
문덕수 시인 / 인연설
어느 연둣빛 초봄의 오후 나는 꽃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랬더니 꽃잎 하나가 내려 와서는 내 왼 몸을 안아보고서는 가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입술이며 이마를 한없이 부비고 문지르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손톱 끝의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하여 어느덧 한세상을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있었다.
새벽바다, 성문각,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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