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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 시인 / 기도
제 몸뚱어리도 이제 어떤 의미가 되고 싶습니다. 영혼이 아니고 바로 썩은 몸뚱어리입니다. 누구를 사랑한다거나 사랑을 받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스스로 한번도 아껴본 적이 없는 몸뚱어리지만, 지금 왜 이리 소중해지는지요. 숨가쁜 어느 골목에서는 썩은 몸뚱어리마저 없이, 갈증에 죽어가는 이가 있을 것만 같아요.
마음 속 붉은 꽃잎, 창작과비평사, 1990
송기원 시인 / 달
"그대를 사랑한다 다짐하던 말 그대 앞에 웃음짓던 얼굴 그대를 향해 내밀던 손길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대와 함께 나누자던 죽음 모두 모두 거짓입니다."
일흔이 넘은 빨간딱지 노인이 창살에 목매어 자살한 밤에 차마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지 못해 창살에 걸려 있는 달을 향해 토해냈더니 달은 다만 휘영청 밝은 달빛으로 내 오장육부는 물론 거짓까지 꿰뚫어 토해낸 나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마음 속 붉은 꽃잎, 창작과비평사, 1990
송기원 시인 / 동백꽃 필 때
달빛 가득한 거문도의 밤에는 부두 뒷골목 낙원정 색시들만 노래 부르는 게 아니리.
이 밤 따라 얄궂게 목소리가 떨리고 가슴을 더듬는 뱃사람 손길도 거칠지 않아
가슴 속에 쌓여 있던 무엇인지 자꾸만 자꾸만 넘쳐난다 싶을 때
달빛 가득한 뒷동산 동백숲에는 기어코 꽃봉오리가 터쳐나는 노래, 노래들!
마음 속 붉은 꽃잎, 창작과비평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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