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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수 시인 /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2
영원히 날아가는 의문의 화살일까. 한 가닥의 선(線)의 허리에 또 하나의 선(線)이 와서 걸린다. 불꽃을 뿜고 얽히는 난무(亂舞), 불사(不死)의 짐승일까.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언어(言語)는 삭아서 떨어지고, 일체가 불타버리고 남은 오직 하나 신비한 매듭.
선공간, 성문각, 1966
문덕수 시인 /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3
은(銀)빛 실날을 뽑으며 그물을 짜는 한 올의 바람, 이윽고 환상처럼 걸리는 조롱(鳥籠) 천사(天使)의 손도 얼씬 못하는 조롱(鳥籠), 그 속에 지구는 무한의 구석 끝을 울리는 쓸쓸한 새.
금(金)빛 구름을 뿜으며 그물을 짜는 한 가닥의 지푸라기, 이윽고 허무의 가지 끝에 걸리는 초롱, 신(神)의 눈도 얼씬 못하는 초롱, 그 속에 우주는 영감의 모서리를 밝히는 호젓한 불꽃.
선공간, 성문각, 1966
문덕수 시인 /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4
그것은 십팔세기(十八世紀)의 내장 속을 기생하는, 한 마리 세균. 그것은 벽(壁) 뒤로 폭동과 군중을 거느린 하나의 점(點). 그것은 침묵의 축축한 밑바닥을 핥는 파편(破片). 그것은 실패한 지도(地圖)의 꿈, 아니 지구를 둥근 삼각형으로 변조하려다 들킨 미충.
선공간, 성문각,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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