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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덕수 시인 /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2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6.

문덕수 시인 /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2

 

 

영원히 날아가는 의문의

화살일까.

한 가닥의

선(線)의 허리에

또 하나의 선(線)이 와서

걸린다.

불꽃을 뿜고

얽히는

난무(亂舞),

불사(不死)의 짐승일까.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언어(言語)는 삭아서

떨어지고,

일체가 불타버리고 남은

오직 하나

신비한 매듭.

 

선공간, 성문각, 1966

 

 


 

 

문덕수 시인 /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3

 

 

은(銀)빛 실날을 뽑으며

그물을 짜는

한 올의 바람,

이윽고

환상처럼 걸리는 조롱(鳥籠)

천사(天使)의 손도 얼씬 못하는

조롱(鳥籠),

그 속에

지구는 무한의 구석 끝을 울리는

쓸쓸한 새.

 

금(金)빛 구름을 뿜으며

그물을 짜는

한 가닥의 지푸라기,

이윽고

허무의 가지 끝에 걸리는 초롱,

신(神)의 눈도 얼씬 못하는

초롱,

그 속에

우주는 영감의 모서리를 밝히는

호젓한 불꽃.

 

선공간, 성문각, 1966

 

 


 

 

문덕수 시인 /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4

 

 

그것은

십팔세기(十八世紀)의 내장 속을

기생하는, 한 마리

세균.

그것은

벽(壁) 뒤로

폭동과 군중을 거느린

하나의 점(點).

그것은

침묵의 축축한 밑바닥을

핥는

파편(破片).

그것은

실패한 지도(地圖)의 꿈,

아니

지구를 둥근 삼각형으로

변조하려다

들킨

미충.

 

선공간, 성문각, 1966

 

 


 

문덕수(文德守) 시인

1928년 경상남도 함안 출생. 호는 심산(心山), 청태(靑笞)이다. 홍익대학교 국문과 및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1956년 {현대문학}에 <침묵>, <화석>, <바람 속에서>가 추천되어 등단. 1964 현대문학상•1978 현대시인상•1981년 아카데미 학술상•1985 펜문학상 수상. 시집: {황홀}(1956), {선(線)·공간(空間)}(1966), {새벽바다}(1975), {영원한 꽃밭}(1976), {살아남은 우리들만이 다시 6월을 맞아}(1980), {다리놓기}(1982), {문덕수시선}(1983), {조금씩 줄이면서}(1985), {그대, 말씀의 안개}(1986) 등. 현재 홍익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