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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시인 / 누님
너무 똑똑한 양반이라 벌이도 없는, 남편 모시고 정순이 누나, 수의를 지어 생계 꾸리니 윤달이면 준비성 많은 노인들의 주문이 쇄도해 바쁘고 그 틈에 큰어머니 수의도 미리 지어 두고
간경화증 남편 청춘에 이별한 정님이 누나, 한복 바느질과 하숙으로 삼남매 기르고 중등학교 시절 의지할 곳 없던 나는 거기에 살며 더러 친구들도 데려다 하숙시키고
시집간 지 일년 만에 잉태한 채 죽은 정희 누나, 큰어머니 잦은 눈물의 샘이 되고 그 뒤 매형은 주유소를 차려 돈벌이 제일 잘하고 새로 색시 얻었지만 아직도 사위 노릇 지극하고
육이오 전쟁통에 종두를 못 맞아 곰보가 된 정옥이 누나, 4H니 전화 교환원이니 안간힘이다가 사귄 청년 운전 면허 따게 해 사고 몇 번 치르고 이제 숙련된 그는 영업용 택시를 몰아 가장(家長) 구실하고
대학의 과사무실에서 만난 선배 은숙이 누나는 자취하는 내 쌀 걱정, 추운 걱정 도맡더니 지금 아내가 되어 있다.
물망초꽃밭, 1991
최두석 시인 / 달래강
임진강이 굽어 흐르다 만나는 휴전선, 그 달개비꽃 흐드러진 십 리 거리에서 부모 없이 과년한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오누이는 몇 마디씩 고구마 넝쿨을 잘라서 강 건너 밭에 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고스란히 다 맞고 바라본 누이의 베옷. 새삼스레 솟아 보이는 누이의 가슴 언저리. 숨막히는 오빠는 누이에게 먼저 집에 가라 하고 집에 간 누이는 저녁 짓고 해어스름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찾아 나섰다. 덤불숲 헤매다 반달이 지고 점점점 검게 소리쳐 흐르는 강물, 그 곁에 누워, 오빠는 죽어 있었다. 자신의 남근을 돌로 찍은 채.
하여 흐르는 강물에 눈물 씻으며 누이가 외었다는 말, "차라리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그래……"
물망초꽃밭,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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