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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은 시인 / 안탈리아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거리에서 고고학적 사랑을 만나는 건 아프지 않다 기억 속에 밀폐된 당신과 나와의 거리를 재어 보는 일 같어서 처음 본 거리에서 속 모른 당신에게 빠지는 건 두렵지 않다 풍경이 되는 일 같아서 익숙한 느낌이 익숙해서 아플 때 헤이, 리라 꽃다발을 줄게 죽음을 항해하는 오디세우스처럼 나를 사랑해줘 올리브 나무를 지나온 바람처럼 나를 흔들어줘 내륙의 작은 식당에서 깨물었던 올리브 절임이 되어줄게 역사와 정치를 말하지 않는 열매가 되어줄게 풍경만 논하는 애인이 되어줄게 헤이, 어제와 내일로부터 고립된 나를 속여 봐 낡아빠진 골목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처럼 나를 울려봐 고대 성곽을 넘은 길처럼 푸른 애인들을 투두둑, 떨구어 줄게 나 혼자 충분히, 낯선 관광지가 되어 줄게
계간 『시인시대』 2019년 가을호 발표
강영은 시인 / 전유(專有)
버려진 꽁초 더미에서 조금 더 긴 토막을 찾는 것은 길에서 토막잠 자는 사람들의 전유만은 아니다 침상에서 막 깬 로얄 코펜하겐, 푸른 꽃무늬 찻잔으로 해피 모닝 마시는 당신도 유리 재떨이 속을 뒤져 그것을 받쳐 든다 침과 재로 더렵혀진 꽁초를 집어 들고 자랑스럽게 불을 붙이는 당신의 꿈은 어제보다 긴 골목을 찾아내는 것 그럴 때 입술은 구멍이라는 기호를 버려도 결심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킨다 한순간을 버티는 결기 같은 것 마지막 도유(塗油)처럼 끈적거리는 촛불이 들어 있을 것 같아 나는 공포를 본다 죽음마저 끊을 수 없는 우리는 점점 꽁초가 되어간다 미세먼지처럼 나는 법도 날아갈 줄도 모르면서 내일은 죽음을 끊을 거야, 식민지가 된 세계의 폐부를 향해 끊임없이 유감을 표하면서,
계간 『모;든 시』 2019년 여름호 발표
강영은 시인 / 블랙홀 탈출 익스프레스
토로스산맥*을 넘는 기차는 시속 60킬로,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처럼 완행이네 산줄기를 돌아가는 나의 여정도 완행이어서 쇠로 된 지붕에 날아가 앉은 비둘기 같네
내 마음의 급행 속도를 창공에 던져버린 나의 비둘기는 과녁 없는 화살, 시간을 쓰러뜨릴 속도가 없어 꾸벅꾸벅 졸다가 멍하니 깨어 있다가
타쉬칼레, 깎아지른 절벽 곡식 창고에 연습용 화살처럼 잠깐 꽂히네 암벽 과녁은 정다운 비둘기 집 같은데 높은 그곳에 아이로 돌아가는 시간이 들어 있나 봐,
타쉬암발라, 꼭대기 창문 향해 할아버지 한 분 성큼성큼 올라가네 아이처럼 날렵하게 밀 창고로 들어서네 썩지도 않고 싹도 내지 않은 밀알이 10년 전 시간 품고 있네
지나간 10년도 도착할 10년도 과녁이 되지 않으니 오늘이란 시간은 썩지 않나 봐, 나의 비둘기는 마지막 속도에 다다르네
백단향 머금은 신의 도시가 세마젠의 육체 위에 수의와 무덤을 걸치네 틴누레의 흰 색깔과 검은색을 두른 나의 비둘기는 화살처럼 춤추네
코니아여* 만인은 신 앞에 평등한가 당신이 만든 신은 내 발에도 맞는가, 빙글빙글 도는 춤사위에 끌려 시간 밖으로 이동하네
당신 앞에 나를 낮추고 당신 앞에 가까이 가기 위해 삶과 죽음 사이로 오가는 나의 속도는 기쁨인가, 슬픔인가 이 질문은 어떤 속도로 여행을 마치는가,
*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을 동서로 뻗은 산맥 **Konya: 터키 중부 코니아 (州)의 주도(州都). 이슬람의 한 종파인 메비레비의 종교춤 '세마 '의 근거지인 도시다 .
계간 『발견』 2019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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