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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운자 시인 / 人間이 고뇌를 하게 한다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31.

강운자 시인 / 人間이 고뇌를 하게 한다

 

 

  冊이 번민 하지 않는다, 배열되어 있을 뿐이다

 

  실내로 돌아온 자가 전등을 켜고 구두를 벗어난 발이

  엄지와 새끼발가락을 제멋대로 뻗으면서

  거실에서 방으로 베란다로 도망친 노예처럼 횡행활보하는지

  시간을 재고 초침소리에 힘을 주어 번뇌함과는 무관한

  공동주택처럼 불가분리하게 도열되어 있을 따름이다

 

  오랫동안 제일 위 칸을 지켜온 서적을 원하는 그를 위하여

  까치발을 하고는 손을 대신 올려야할 이유를 모른다

  바닥에 놓인 출판물에 눈이 가는 자를 배려하고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정중하게 숙일 일이 없는 것이다

  내부를 애써 열어두지 않아도 사람들이

  틀림이 없이 옆으로 지나치며 걸어가고 흩으며 간다

  진열되어 있는 도서가 근심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

 

  고심하지 않는 전집 옆엔 人間이 고뇌를 한다

  개미처럼 소리 없이 거닐고 떠들썩하게 요란하지 아니하며

  굴속에 식량을 비치하고 개미 같이 겨울의 꿈을 꾼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시냇물이 흐르듯 잔잔하게 하고

  에베레스트같이 장엄한 음을 이끌어내는 지휘자가 아니다

  비석처럼 대열을 이루고 있으므로, 침묵의 집이므로

  직립보행 하는 영장류가 소리 내어 목이 잠기도록 읽고 밤을 지새운다

 

  冊처럼 가벼워지려고 바위산을 무겁게 오르고

  오지를 탐험하며 철탑의 피뢰침 같은 더듬이를 얻는다

 

웹진 『시인광장』 2013년 2월호 발표

 

 


 

강운자 시인

2007년 《시현실》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