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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 바깥
장대비 속을 멧새 한마리가 날아간다 彈丸처럼 빠르다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갈 곳이 멀리 마음이 멀리에 있기 때문이다 하얀 참깨꽃 핀 한 가지에서 도무지 틈이 없는 빗속으로 소용돌이쳐 뚫고 날아가는 멧새 한 마리 저 全速力의 힘 그리움의 힘으로 멧새는 어디에 가 닿을까 집으로? 오동잎 같이 넓고 고요한 집으로? 中心으로?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
문태준 시인 / 바닥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문태준 시인 / 비가 오려 할 때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 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철름 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 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문태준 시인 / 석류
윗옷 단추를 끄르듯 웃음이 웃음의 앞자락을 헤치며
석류는 툭 터졌네 넘어진 화병처럼
언제라도 비탄이 없는 악보
속 깊은 가을의 정교한 건축
붉은 잇몸의 빛 알알이 조용한 시간의 카펫 위에 흩어지네
문태준 시인 / 수평(水平)
단 하나의 잠자리가 내 눈앞에 내려앉았다 염주알 같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투명한 두 날개를 수평으로 펼쳤다 모시 같은 날개를 연잎처럼 수평으로 펼쳤다 좌우가 미동조차 없다 물 위에 뜬 머구리밥 같다 나는 생각의 고개를 돌려 좌우를 보는데 가문 날 땅벌레가 봉긋이 이어놓은 땅구멍도 보고 마당을 점점 덮어오는 잡풀의 억센 손도 더듬어보는데 내 생각이 좌우로 두리번거려 흔들리는 동안에도 잠자리는 여전히 고요한 수평이다 한 마리 잠자리가 만들어놓은 이 수평 앞에 내가 세워놓았던 수많은 좌우의 병풍들이 쓰러진다 하늘은 이렇게 무서운 수평을 길러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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