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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 죽음
빛 밝은 삼월 아침 상여 소리 지나는데
황매꽃 지고 꽃상여 지나는데
산란하던 마음 이리 차분해
황토 한줌 황산 어디쯤 산이면 어디쯤 눈부실 황토 한줌
종이꽃 하나 내 목숨.
김지하 시인 / 지리산 근처
가긴 가지만 근처까지만 가는 길
구름 도는 봉우리 저 푸른 빛
영기(靈氣)도 원한(怨恨)도 함께 서린 지리산 저기
안 간다 우러러볼 뿐 간다만 구례(求禮) 화엄사(華嚴寺) 화개(花開)까지만
강 건너가고 작은 폐활량에 헐떡이며 쉼없이 가고
다 가면 못 오리
가긴 가지만 근처까지만 가는 그 길
돌아서는 뒤꿈치가 유난히도 둥글고 하얗던 그 날
고달픈 아름다운
가며 가지 않는 이순(耳順) 근처 어느 날.
김지하 시인 / 초롱불 진달래
삭둑삭둑 키를 잘라낼 땐 피 한 방울 안 나던 진달래 오늘 아침 창문을 열고 보니 꽃분홍 선혈을 뒤집어쓰고 있네
조금씩 가지를 쳐낼 땐 신음소리 한 마디 안 내던 진달래 오늘 아침 물주다 보니
빨갛게 켜든 초롱불 속에 마디마디 아픔이 웅크린 눈물을 감추고 있네
초롱불 한 잎 한 잎 만지작거리다 돌아선 나의 등뒤에서 진달래 아픈 비명소리가 딸,딸,딸, 신발을 끄을며 따라오네
김지하 시인 / 틈
사랑은 틈
내안에 벌어지는 꽃이파리 하나
해살 비쳐들고 바람 불어오고
벌이 오고 또 나비가 오고
흰 구름 흐르다 흐르다 밤이면
푸른 별자리들 기울어 이슬 내리고
사랑은 틈
거리에서도
아아
너로 하여 나
우주에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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