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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지하 시인 / 죽음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31.

김지하 시인 / 죽음

 

 

빛 밝은 삼월 아침

상여 소리 지나는데

 

황매꽃 지고

꽃상여 지나는데

 

산란하던 마음

이리 차분해

 

황토 한줌

황산 어디쯤 산이면 어디쯤

눈부실 황토 한줌

 

종이꽃 하나

내 목숨.

 

 


 

 

김지하 시인 / 지리산 근처

 

 

가긴 가지만

근처까지만 가는 길

 

구름 도는

봉우리 저 푸른 빛

 

영기(靈氣)도 원한(怨恨)도

함께 서린 지리산 저기

 

안 간다

우러러볼 뿐

간다만

구례(求禮) 화엄사(華嚴寺)

화개(花開)까지만

 

강 건너가고

작은 폐활량에

헐떡이며 쉼없이 가고

 

다 가면

못 오리

 

가긴 가지만

근처까지만 가는 그 길

 

돌아서는 뒤꿈치가

유난히도 둥글고 하얗던 그 날

 

고달픈 아름다운

 

가며

가지 않는

이순(耳順) 근처 어느 날.

 

 


 

 

김지하 시인 / 초롱불 진달래

 

 

삭둑삭둑 키를 잘라낼 땐

피 한 방울 안 나던 진달래

오늘 아침 창문을 열고 보니

꽃분홍 선혈을 뒤집어쓰고 있네

 

조금씩 가지를 쳐낼 땐

신음소리 한 마디 안 내던 진달래

오늘 아침 물주다 보니

 

빨갛게 켜든 초롱불 속에

마디마디 아픔이 웅크린

눈물을 감추고 있네

 

초롱불 한 잎 한 잎 만지작거리다

돌아선 나의 등뒤에서

진달래 아픈 비명소리가

딸,딸,딸, 신발을 끄을며 따라오네

 

 


 

 

김지하 시인 / 틈

 

 

사랑은

 

내안에 벌어지는

꽃이파리 하나

 

해살 비쳐들고

바람 불어오고

 

벌이 오고 또 나비가 오고

 

흰 구름 흐르다 흐르다

밤이면

 

푸른 별자리들 기울어

이슬 내리고

 

사랑은

 

거리에서도

 

아아

 

너로 하여

 

우주에 살고

 

 


 

김지하(金芝河, 1941~) 시인

1941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는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애린』, 『검은산 하얀 방』, 『이 가문 날의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중심의 괴로움』, 『화개』 등이 있고,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생명』, 『생명과 자치』, 『사상기행』, 『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대설(大說)『남』, 『김지하 사상전집 (전3권)』, 『김지하의 화두』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 회의 로터스 특별상(1975),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 (1981),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등과 이산문학상 (1993), 정지용문학상 (2002),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