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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성백선 시인 / 에스키모인의 막대기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31.

성백선 시인 / 에스키모인의 막대기

 

 

  약수터 지나 아주 먼 곳까지 걷고 싶다

  내 안에 도사린 검은 짐승 몰아낼 때까지

 

  에스키모인들은 슬픔이 사나워질 때 무작정 걷는다지

  슬픔이 아기 눈물처럼 여린 눈꽃으로 나릴 때  멈춘다지

  돌아서는 그 자리에 막대기 하나 꽂아둔다지

 

  슬픔이 또 다시 거센 눈보라를 이끌고

  어깨를 짓눌러 와 걷기를 나설 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가 보이지 않으면 견딜만한 거지

  언젠가 꽂은 그 막대기 만나기 전

  마음속 짐승을 이기고 돌아서면 슬픔이 한 뼘은 줄어 있지

  다가오는 삶은 끊임없이 그 마디를 자르고 잘라

  거룩한 막대기 하나 꽂는 일

 

  오늘 나만이 알 수 있는 곳에 막대기 꽂고 왔다

 

  창밖, 적설을 이기고 우뚝 선 가지 하나

  땅에 꽂은 설해목처럼

 

웹진 『시인광장』 2013년 2월호 발표

 

 


 

성백선 시인

1965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8년 《사이버 문학상》과 계간 《시작》에 〈애어리염낭거미〉외 4편을 발표하며 詩作활동 시작. 시집으로 『분합문』(시와시학, 2011)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