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 시인 / 악력(握力)
전지(剪枝)를 하다가 본다. 제 몸통을 말아 쥔 포도나무 넝쿨손들 뜨거운 생의 한 순간을 거머쥔 채 식은 망자(亡者)의 손아귀 같다.
몇 번이나 허공을 젓다가 간신히 붙잡은 것
제 몸인 줄 모르고 소용돌이처럼 휘감았을 더듬이들 좀처럼 펴지질 않는다.
밑동까지 뒤틀리게 한 이 힘이 공중에 포도송이들을 매달았을 터,
태양이 다 식도록 익지 않는 시디신 몇 알이 온 몸을 쥐어짠 증거.
마디를 자르던 손을 슬며시 펴 본다. 세상에 올 때
꼬옥 말아 쥐고 울음을 터뜨리던 그 아이의 조막손
악력을 잃은 손금들 여전히 허공으로 뻗혀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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