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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유석 시인 / 악력(握力)

by 파스칼바이런 2020. 12. 31.

김유석 시인 / 악력(握力)

 

 

  전지(剪枝)를 하다가 본다. 제 몸통을 말아 쥔 포도나무 넝쿨손들

  뜨거운 생의 한 순간을 거머쥔 채 식은 망자(亡者)의 손아귀 같다.

 

  몇 번이나 허공을 젓다가 간신히 붙잡은 것

 

  제 몸인 줄 모르고 소용돌이처럼 휘감았을 더듬이들 좀처럼 펴지질 않는다.

 

  밑동까지 뒤틀리게 한 이 힘이 공중에 포도송이들을 매달았을 터,

 

  태양이 다 식도록 익지 않는 시디신 몇 알이 온 몸을 쥐어짠 증거.

 

  마디를 자르던 손을 슬며시 펴 본다. 세상에 올 때

 

  꼬옥 말아 쥐고 울음을 터뜨리던 그 아이의 조막손

 

  악력을 잃은 손금들 여전히 허공으로 뻗혀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김유석 시인

1960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전북대학 문리대를 졸업.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신월기계화단지〉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상처에 대하여』(한국문연, 2005)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