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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수찬 시인 / 빗소리라는 철학서

by 파스칼바이런 2020. 12. 31.

서수찬 시인 / 빗소리라는 철학서

 

 

  빗소리 만큼

  두꺼운 책도 없다

  책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예 빗소리를 펼쳐

  보지도 않을 것이다

  라면이나 끓여서

  그 위에 올려 놓을 것이 분명하다

  파리나 잡는데에

  간혹 사용 할 것이다

  빗소리 첫 장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책 첫 장을 열 힘도 없는 자는

  먹지도 말라

  그런데 책 첫 장을 열 힘은

  평생에 한 번 찾아 올 것이다

  역도 선수도 들지 못한

  빗소리의 첫 장은

  자동적으로 내려오는

  내 눈꺼풀과 너무도 닮아있다

  어떤 때는 빗소리를 들고 서 있으면

  경로석에서 조차

  자리 양보할 때도 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빗소리라는 철학서.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서수찬 시인

1963년 광주 광산에서 출생. 1989년 《노동해방문학》에 <접착을 하며>, <복개공사>, <안전장치>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시금치 학교』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