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갑 시인 / 언어 파출소
어느 날 시와 소설 희곡과 동요가 한 날 한 시에 파출소로 연행됐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수갑을 찬 시가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 진실은 머지않아 수갑과 함께 풀릴 거요 뒤이어 소설이 진술하려 하자 곤봉을 든 잠언경사가 소설의 입을 틀어막았다 희곡이 재빨리 우아한 손짓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했지만 잠시 실소를 보인 암전형사는 철창 안으로 희곡을 밀어 넣어 버렸다 마지막 동요가 양손 끝을 가지런히 모으고 목소리를 가다듬자 변덕경감이 동요가 시작되기도 전에 돌변하여 동요를 응급차에 실어 정신병원에 수감시켰다 보석도 없고 그 흔한 진술서 한 장 없는 파출소 오늘도 또 한 무더기의 언어가 줄줄이 연행되고 있다 언어가 언어에게 무언의 수갑을 채우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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